에피소드136 [에피소드] 비 개인 대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대지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보니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사정없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전날 아침 공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여름도 아닌데 습기를 잔뜩 머금은 아침 공기에 게운하지 못했던 아침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공기방울 하나하나 닿을 때마다 생기가 도는 듯했습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누워 있기에는 너무나 공기가 깨끗했습니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썼던 회색 건물들이 오랜만에 자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밝게 빛나는 햇살과 어울려 생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는 척 척 소리를 냈습니다.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아스팔트에는 비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물이 고여 .. 2023. 6. 29. [에피소드] 아욱된장국 우리 아침 밥상에는 아욱된장국이 자주 올라오곤 했었다. 파란 빛깔을 머금은 아욱은 된장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많은 재료를 마다하고 아욱을 자주 고집했다. 어느 날인가 소쿠리 가득 쌓인 파란색 물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당시 파란색 생물체 스머프가 한참 인기를 얻고 있었던 탓에 파란색 빛깔을 띤 물건이면 눈에 확 들어왔을 때였다. 커다란 잎과 줄기가 온통 같은 빛깔을 내는 걸 보면서 참 신기했었다. 널따란 잎은 살짝 데쳐 호박잎처럼 쌈을 싸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이게 아욱이다.”라면서 아욱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큼직큼직한 크기라 한 소쿠리를 가득 채웠다 해도 양은 많지 않다고 하셨다. 여느 채소처럼 손질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2023. 5. 30. [에피소드] 살 맛 나는 세상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발대식을 마치고 디지털 교육 도우미 스무 명은 2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우리는 60대와 70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구성된 봉사자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대부분을 영상으로 교육받았다. 스마트폰 사용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지원했으나 체계적으로 배우자니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택시를 부르고 타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떤 급의 차를 선택해서 결제하고 취소하는 것을 알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심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이것저것 질문하는데도 부담이 덜해서 좋다. 마지막 날에는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두 분의 조언-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도 모르시냐고 하지 말 것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2023. 4. 27. [에피소드] 장미베고니아 이모라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는 분이 있다. 집에 놀러 가면 엄마처럼 맛있는 것을 많이 챙겨 주셔서, 찾아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내신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단독주택이다 보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문 가까이에는 화분이 두세 단으로 쌓여있다. 꽃을 좋아하고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외출할 때마다 화분 한두 개씩은 사 오는데, 문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죽이는 꽃을 그렇게 매번 사 오세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꽃집을 지날 때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라고 하시니 딱히 뜯어말릴 수도 없다. 집으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자 배웅하신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나의 손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며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라며.. 2023. 4. 18. [에피소드] 고향의 출렁다리 가까이 사는 막내가 고향에 간다기에 아내와 함께 따라나섰다. 이번에는 재종들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릴 적에는 사촌이 없기에 재종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설이면 세배를 드린다고 새벽부터 대문을 두드려 잠을 깨우고, 자치기를 한다고 이 논 저 밭으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장년이 되어 고향에 갔을 때는 농사일 제쳐두고 물고기를 잡아 와 소주잔을 기울인 그들을 어떻게 잊을까. ‘마스크 해제’로 마음 편히 선산을 찾게 되어 조상님께 죄송하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다. 강 건너 도로에서 보면 소나무들이 선영을 가린다며 동생이 조카들과 함께 나무를 베어내고 정리해서 보기 좋게 꾸며 놓았다. 고향 동네 앞에는 아담한 펜션이 여러 채나 자릴 잡아서 몇 채만 재생해 놓은 고향 마을이 더욱 어색하게 .. 2023. 3. 30. [에피소드] 고등어구이 국민 생선이라는 고등어가 오늘 밥상에 올라와 있다. 물이 좋아서 사 왔다는 고등어자반이 참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두툼하게 오른 살이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도 않았는데도 프라이팬에 붙지 않고 뒤집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엄마의 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요리는 맛만 있으면 된다고들 하지만, ‘보기가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예쁜 모양으로 담아내고 싶은 것은 요리하는 사람들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노릇노릇 익은 고등어는 군침을 삼키게 만들기는 하지만,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는 단점이긴 하다. 고등어의 비린 향이 옷에 밸까 봐 고등어구이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알고 있다. 후드를 켜도 냄새를 다 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고등어구이를 한번 맛보고 나면 또 먹고 싶은 유혹을.. 2023. 3. 21. 이전 1 2 3 4 5 6 7 8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