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39 [에피소드] 가로수길 은행나무 일요일 아침이다. 눈을 떠보니 6시가 넘었다. 5시에는 출발하겠다고 마음먹고 잠을 잤는데 깨어보니 한 시간이 늦어진 셈이다.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옷을 대충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폭염의 기세가 사나울 거라는 일기 예보를 접하고 보니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산에 오르는 길이다. 평소 같았다면 휴일이라는 안도감에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아스팔트는 후끈 열기가 달아오르는 듯싶었다. 보도블록을 따라 바삐 움직였지만, 중간중간 신호등이 가는 길을 막아섰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오늘 일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10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 벌써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기세도 상당할 듯하다. 길게 뻗은 인도를 걸을 때마다 가로.. 2023. 8. 31. [에피소드] 시벳 커피 고소한 커피 향이 복도에 가득하다. 커피 향이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복도 안에 갇혀 있는 모양이다. 고시원 형님에게 줄 물건이 있어서 찾아온 건데, 커피 향을 맡고 보니 그냥 가기엔 섭섭했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거 보면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돌아서 나가려는 데 방문이 열렸다. 풍채가 큰 아저씨가 커피잔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대뜸 묻는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잠시 망설였다. 커피를 얻어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순간 아저씨는 커피 한 잔을 쑥 내밀었다. “잘 되었네요. 혼자 마시기 섭섭했는데요.” 커피를 공짜로 한 잔 마시게 되었는데 말동무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커피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참 커피 향이 좋았다. “원두를 내려 드시나 봐요?”라고 운을 띄웠다.. 2023. 7. 27. [에피소드] 경청, 칭찬, 공감 디지털 도우미로 활동하면서 세운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끝까지 경청하고 칭찬과 공감을 표시해 드리자’다. 아파트를 방문하여 봉사한 지도 두 달이 지났지만, 가르칠 게 백이라면 이제야 겨우 서너 개의 문턱을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다. 유치원생인 손자보다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도 “할머니는 문자도 못 보내시네.”’가 못내 섭섭한 모양새다. 어제 배운 것을 오늘이면 거의 다 잊어버려서 반복하는 게 일상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많이 좋아졌네요. 선생님 연세에 이 정도 하시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진심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싫어하는 표정이 아닌 게 서로를 흐뭇하게 만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은가! 스마트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은 기초만 알고 있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2023. 7. 13. [에피소드] 비 개인 대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대지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보니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사정없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전날 아침 공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여름도 아닌데 습기를 잔뜩 머금은 아침 공기에 게운하지 못했던 아침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공기방울 하나하나 닿을 때마다 생기가 도는 듯했습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누워 있기에는 너무나 공기가 깨끗했습니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썼던 회색 건물들이 오랜만에 자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밝게 빛나는 햇살과 어울려 생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는 척 척 소리를 냈습니다.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아스팔트에는 비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물이 고여 .. 2023. 6. 29. [에피소드] 아욱된장국 우리 아침 밥상에는 아욱된장국이 자주 올라오곤 했었다. 파란 빛깔을 머금은 아욱은 된장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많은 재료를 마다하고 아욱을 자주 고집했다. 어느 날인가 소쿠리 가득 쌓인 파란색 물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당시 파란색 생물체 스머프가 한참 인기를 얻고 있었던 탓에 파란색 빛깔을 띤 물건이면 눈에 확 들어왔을 때였다. 커다란 잎과 줄기가 온통 같은 빛깔을 내는 걸 보면서 참 신기했었다. 널따란 잎은 살짝 데쳐 호박잎처럼 쌈을 싸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이게 아욱이다.”라면서 아욱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큼직큼직한 크기라 한 소쿠리를 가득 채웠다 해도 양은 많지 않다고 하셨다. 여느 채소처럼 손질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2023. 5. 30. [에피소드] 살 맛 나는 세상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발대식을 마치고 디지털 교육 도우미 스무 명은 2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우리는 60대와 70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구성된 봉사자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대부분을 영상으로 교육받았다. 스마트폰 사용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지원했으나 체계적으로 배우자니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택시를 부르고 타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떤 급의 차를 선택해서 결제하고 취소하는 것을 알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심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이것저것 질문하는데도 부담이 덜해서 좋다. 마지막 날에는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두 분의 조언-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도 모르시냐고 하지 말 것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2023. 4. 27. 이전 1 2 3 4 5 6 7 8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