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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에피소드] 그 여름의 힐링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서인지, 시골 그것도 오지 중의 오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여름이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 당시만 해도 농촌은 농사일로 분주해서 피서나 휴가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여름철이 되면 피서 못지않은 우리만의 힐링은 분명히 있었다.이때는 방학이라 유일한 숙제인 일기는 날씨만 기록해 놓고 (방학을 하루 이틀 남겨놓으면, 아침 먹고 세수하고 심부름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한꺼번에 작성했다) 부모님께 잡히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으므로 아이들은 약속이나 하듯, 저마다 아침만 먹으면 일찌감치 집을 벗어나곤 했다. 장난감이나 휴대전화가 없어도 주위는 온통 놀 거리였다. 나무마다 손만으로도 잡을 수 있는 매미가 지천으로 노래 부르며 우리를 반겼고, 이 놀이에도 ..
[에피소드] 뱃살 하루에 여덟 시간은 의자에 앉아 생활하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뱃살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탓에 편한 복장을 선호하게 되었고, 고무줄이 있는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게 되었다. 그래서 뱃살이 나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같다. 어느 날이었다. 지인 결혼에 가기 위해 양복을 꺼내 입게 되었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 넉넉했던 허리둘레가 단추를 채우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만 것이었다. 심각해진 상황을 직감하게 되었다.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올챙이 배 아저씨를 조금씩 닮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 되겠구나! 운동을 시작해야겠네.’ 다부진 마음으로 그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으로 빠르게 걷기 운동을 했다. 거의 2km 거리를 쉬지 않고 걸었다. 예전에..
[에피소드] 자존심이 뭐길래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로변에 소공원이 조성되었다. 600평 정도의 넓이에 나무도 심고 여러 모양의 의자도 갖추었다. 개장기념으로 벼룩시장도 열고, 밤에는 무료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월드컵 중계 때는 응원의 함성이 새벽하늘에 진동했다.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오후가 되면 열기를 피해 나온 노인네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다. 개별적으로 나온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는데, 할아버지들은 같은 의자에 앉아도 나 몰라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지만 늙어가면서 왜 이렇게 달라지는지가 못내 궁금해서, 할머니들의 옆자리에 앉아 사연을 들어 보았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있나요?”올해부터 경로카드를 받아서 전철도 공짜로 타고 다닌다는 할머니는 “이 사람이 방금 손자 이야기를 꺼내기..
[에피소드] 끝이 좋으면 다 좋아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기분 좋은 상상은 무참히 깨져 버리기 시작합니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에 손가락이 살짝 끼게 됩니다. 피도 나지 않고 상처도 나지는 않았지만 살짝 낀 듯한 손가락은 이내 아파집니다. ‘조금만 조심할 걸!’ 중요한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허둥댄 것이 실수였습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손가락이 아파집니다. 서둘러 도착한 약속장소에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데 전화가 울리지요. “미안해. 한 시간 정도 늦어질 거 같다. 이해해줘. 오늘은 내가 아이 유치원에 보내는 날이라서.”라는 이유를 달았는데 한숨만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작 알려 주지!” “깜빡했어.” 하늘이 노래..
[에피소드] 축구 하면 좋겠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봄 향기가 살살 풍겨오는 토요일 오후, 아들이 이사 간 아파트에서 집들이를 겸한 푸짐한 점심을 먹은 후 손자의 손을 잡고서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인터넷을 통해 학교 사진을 둘러보고 운동장 모습도 가늠했지만, 아파트 사이에 묻혀있는 1,000명가량의 건아를 품고 있다는 교정이 포근하게 다가왔다.손자 뒤를 따라 1학년 교실을 창문 너머로 구경했다. 남아 18명과 여아 14명이 공부하는 곳에는 책걸상이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었고, 입학식 때 아들이 보내준 동영상으로 눈에 익은 대형 걸개그림이 벽면 하나를 채우고 있었으며 그 위에 쓰인 ‘명문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도 그대로 있었다. ‘바늘구멍처럼 추첨되기 어렵다는 사립도 아니고, 시험 쳐서 입학한 곳도 아닌데 명문이라..
[에피소드] 청소의 기쁨 지난주 토요일, 엄마와 나는 청소를 하기로 했다. 겨우내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버리자고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나는 욕실을 맡았다.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창문을 열고, 세면대부터 닦기 시작했다. 수세미에 액체비누를 가득 짜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청소했다. 묵은 때를 벗겨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칫솔을 이용해서 닦았다. 세면대에 이어진 하수구의 이음새 마디까지 일일이 불리해서 청소했다.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듯싶었던 머리카락과 찌꺼기가 엉겨 붙어 있었다. 세면대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이 찌꺼기 때문이었으리라. 찌꺼기가 제거된 세면대에 물을 흘려 내려보냈더니, 내려가는 소리마저 예전과 사뭇 달랐다. 막혔던 것이 펑 뚫린 거 같은 ..
[에피소드] 하모니카 하모니카 소리가 생각나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그림부터 떠오른다.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만발한 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뒷동산에 철수와 영희의 정다운 모습이 보인다. 철수는 다리를 꼬고 누워서 하모니카를 불고 영희는 오른팔로 얼굴을 받치고 부러운 듯이 철수를 바라본다.’ 그 당시 도회지로 유학 갔다가 일요일을 맞아 찾아온 고등학생 형이 하모니카로 교과서에 실린 동요를 부르면 달달 떨리는 반주에 반해서 꼬마들이 따라다니곤 했다. 어머니를 졸라서 자그마한 연습용 하모니카를 손에 쥐었지만 워낙 음정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서 연습만 하다가 그만둔 것도 기억난다. 지난번에 온 손자가 “할아버지, 친구 집에서 하모니카 불어봤다. (양손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이렇게 잡아서 숨을 내불고 들이마셨더니..
[에피소드] 선생님의 메일 나에게는 오래된 메일 친구가 있다. 때로는 엄마 같고 때로는 누나 같고 또 어떨 때는 친구 같은 메일 친구다. 오랫동안 많은 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선생님께서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큰 키에 예쁜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좋은 성격에 반 남자아이들의 우상이시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선생님과 참 많은 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우리가 사는 곳이 수도권에 인접해 있는 섬이었고 전적지로 유명했던 곳이라,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때가 되면 선생님을 졸라서 낚시도 갔었고, 가을에 산천초목이 예쁘게 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까운 뒷산으로 올랐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