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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비 개인 대지

by 앰코인스토리.. 2023. 6. 29.

사진출처 : freepik.com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대지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보니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사정없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전날 아침 공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여름도 아닌데 습기를 잔뜩 머금은 아침 공기에 게운하지 못했던 아침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공기방울 하나하나 닿을 때마다 생기가 도는 듯했습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누워 있기에는 너무나 공기가 깨끗했습니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썼던 회색 건물들이 오랜만에 자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밝게 빛나는 햇살과 어울려 생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는 척 척 소리를 냈습니다.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아스팔트에는 비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간다면 얼른 피해야겠다는 준비 정도는 해야 할 듯싶었습니다.

 

얼마 전, 내 뒤를 따르던 모녀의 대화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듣고 싶어 듣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한번 들어줬으면 하는 것처럼 목소리 톤을 높였습니다. “난 비가 온 다음날 걷는 게 참 좋아.” 엄마는 20대쯤 되어 보이는 딸한테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날이면 더욱 기분이 좋아지더라.” 잠자코 듣고 있던 딸이 “엄마, 나도 그런데.” 그 모녀가 딱 좋아할 것만 같은 오늘이 그런 날인 것입니다. 그때 나는 많은 이들이 비 개인 다음날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신호등을 지나 공원 입구에 닿았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운동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고운 운동복을 차려 입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내 옆을 지나쳐 갔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많이 흡입하려고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그 분의 뒷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공원 보도블록도 밤새 내린 비로 젖어 있었고, 나무며 풀이며 잔디며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때마다 눈을 시원하게 만든 초록색의 향연이었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산새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뽐냈습니다. 시끄럽다고 얼굴을 찌푸릴 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련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저마다 행복한 미소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부는 바람이 가슴 속을 더욱더 뻥 뚫리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근심걱정 다 내려놓고 오늘은 여기서 행복을 만끽하라고 격려하는 듯,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운동하려고 갖춰 입은 만큼 그냥 가기에는 너무 섭섭해서 운동기구에 몸을 싣고 손발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운동기구 손잡이에는 여러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손잡이에 남아 있는 물 방울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운동기구라 운동이 끝나면 화장실에 들러 손을 여러 번 닦고 또 닦고 집으로 향했는데, 비를 맞으며 깨끗해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보니 오늘은 화장실 가는 수고는 덜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느낌이 한 번 더 들었습니다.

 

보도블록으로 손을 뻗은 나무들이 많다 보니 나뭇잎에 남아있던 물방울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떨어졌습니다. 물방울을 맞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피해 다녔지만 물방울 세례는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다는 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물방울 몇 개였지만 차디찬 느낌이 온몸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아이고, 차!”라는 외마디 비명을 순식간에 토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원 입구에 다시 되돌아올 때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작품 하나를 보는 듯했습니다. 비에 젖은 공원 정경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