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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시벳 커피

by 앰코인스토리.. 2023. 7. 27.

사진출처 : freepik.com

고소한 커피 향이 복도에 가득하다. 커피 향이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복도 안에 갇혀 있는 모양이다. 고시원 형님에게 줄 물건이 있어서 찾아온 건데, 커피 향을 맡고 보니 그냥 가기엔 섭섭했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거 보면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돌아서 나가려는 데 방문이 열렸다. 풍채가 큰 아저씨가 커피잔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대뜸 묻는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잠시 망설였다. 커피를 얻어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순간 아저씨는 커피 한 잔을 쑥 내밀었다. “잘 되었네요. 혼자 마시기 섭섭했는데요.” 커피를 공짜로 한 잔 마시게 되었는데 말동무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커피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참 커피 향이 좋았다. “원두를 내려 드시나 봐요?”라고 운을 띄웠다.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면 다 똑같은 원두커피이겠지 싶어 물어본 것인데 아저씨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커피는 다른 커피와 다르다며 시위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러면서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는 ‘시벳커피’입니다. 나중에 시벳커피라고 검색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라고 하셨다. 처음 듣는 커피였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한 모금 마셔 보았다. 프림도 설탕도 들어 가지 않는 원두커피만의 맛이었다. 원두커피 하면 ‘수프리모’를 알고 있었기에 ‘이 커피가 수프리모와 다른가요?’라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한 호흡을 가다듬지 않았다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시벳커피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난 그 배설물 커피콩을 씻어 커피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보았던 수프리모나 예가체프 등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설물이라는 말에 다소 어감이 안 좋았지만 사향고양이 위 속에 들어가면서 단백질이 제거되고 커피의 향이 더 좋아진다고 했다. 문득 벼를 심어 놓은 논에 오리를 풀어놓고 우렁이를 키워, 질 좋은 쌀을 만들어 낸다는 공법이 떠올랐다.

 

시벳커피를 향한 열정과 애정이 아저씨 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큰 성공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고시원 생활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니 측은함이 마구 밀려왔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기에 시벳커피 한 잔 값은 비싸다고 했다. 가격이 비싸다 보니 대중성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고, 사업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탈탈 털어 입에 넣었다. 비싼 커피라는 말에 한방울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벳커피를 찾아보았다. 시벳커피의 정의와 함께 아저씨의 10년 전 사진과 기사가 보였다.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TV에서 보던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와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는 또 도전한다고 하셨다. 다시 동남아로 들어가실 모양이었다. 7전 8기 끝에 성공한 인생 스토리들을 종종 접한다. 어떤 이는 안되는 걸 굳이 매달릴 필요가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위대한 작품을 위해 혼을 담는 예술가처럼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일에 나의 모든 것을 걸어 보는 것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과정이 험난하다고 해도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 누군가를 그 길을 따라 가듯이, 아저씨의 시벳커피에 대한 사랑을 아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시벳커피의 향이 더 많은 곳으로 퍼져 나가게 되리라.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