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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가로수길 은행나무

by 앰코인스토리.. 2023. 8. 31.

사진출처 : freepik.com

일요일 아침이다. 눈을 떠보니 6시가 넘었다. 5시에는 출발하겠다고 마음먹고 잠을 잤는데 깨어보니 한 시간이 늦어진 셈이다.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옷을 대충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폭염의 기세가 사나울 거라는 일기 예보를 접하고 보니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산에 오르는 길이다. 평소 같았다면 휴일이라는 안도감에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아스팔트는 후끈 열기가 달아오르는 듯싶었다. 보도블록을 따라 바삐 움직였지만, 중간중간 신호등이 가는 길을 막아섰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오늘 일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10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 벌써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기세도 상당할 듯하다. 길게 뻗은 인도를 걸을 때마다 가로수에 숨어 있는 매미들은 심하게 울어 댔다. “맴, 맴, 맴!” 매미들이었다. 한동안 쓰름매미가 장악했던 공간을 매미가 많이 만회한 것 같다.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산 입구에서 뜨거운 태양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산을 올랐다.

 

산의 정상에 맛보는 공기는 참으로 신선했다.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하산을 선택했다. 누가 보면 번갯불에 콩 볶아 먹겠다고 잔소리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폭염에 대비해 짧은 반소매를 선택해서 왔건만 집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뜨거운 태양이 그 위용을 드러내면서 잠시 잠깐의 그늘은 무척이나 소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이지만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팔을 벌려 큰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해를 피해 그늘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게 참 고마운 일이었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봐 왔던 가로수 은행나무를 오늘에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두 팔을 벌려 안으려 해도 닿지 않을 만큼 굵어져 있었다. ‘뭘 먹고 저렇게 자랐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때가 되면 가지치기하는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굵은 줄기를 만들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대기 오염에 강해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택했다는 전문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3~4m 간격으로 세워진 은행나무들은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끊김 없는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풍성하게 자란 은행잎들은 햇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여러 겹의 성벽을 싸 놓은 듯 견고했다. 곧고 뻗어 올라가는 은행나무의 모습은 메타세쿼이아 숲길 부럽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100여 m 앞을 내다보았다. 인도를 따라 일렬로 서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도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흐르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문득 이 먼 길을 은행나무가 없었다면 어찌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택시나 버스를 잡아타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모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보기에 안 좋고 냄새도 많이 난다는 고충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도시의 이 답답한 공기를 이겨내며 넓고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 가로수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항상 곁에 있어 잊고 사는 작은 것들이 참 많을 것이다. 찬물에 샤워를 하고 나면 노트를 꺼내어 나를 고맙게 만들어 주는 게 뭐가 있을지 하나하나 정리해 봐야겠다. ‘은행나무야 고마워!’ 하면서 은행나무를 꼭 안아주는 날을 만들어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