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꽤 쌀쌀해졌습니다. 매일하는 아침운동이지만 오늘만은 거르고 싶을 정도로 코끝이 찡해옵니다. 아직 11월 하순도 아닌데 뚝 떨어진 기온을 보고 나니 그리운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 시절, 언 손을 녹이기 위해 붕어빵을 건네던 그 마음씨를 아직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싸고 맛있는 것이 붕어빵이라면서 붕어빵 예찬론을 늘어놓으며 너스레를 떨던 그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전화기를 열어 친구의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퇴근하고 시간 괜찮냐?” 친구는 늘 그래왔듯 나의 말에는 거절없이 “응!”이라는 대답을 해줬습니다. “7시에 보자.” “알았어.”
약속은 잡기는 했는데 만날 장소는 참 마땅치 않았습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친구라 알딸딸한 모양으로 귀가를 시키면 친구 아내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을 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가을하늘이라 높고 파랬습니다. 공기도 신선함을 유지하며 제법 따스한 촉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걸어 집으로 가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생으로서의 묵직한 이슈는 물론 사소한 생활 얘기를 서로 나누며 길을 걸었고, 집 근처에 도달하면 늘 그래 왔듯 동네 오락실에 들러 오락게임을 했었습니다. “내기다.” “오늘은 순대다.” 그러면서 대결 게임을 하곤 했었지요. 한 판 지고 나면 삼세판으로 올라갔고, 삼세 판에서 이길 기미가 없으면 오 판 삼선 승을 고집하곤 했었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게임을 몰두했던 때가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기면 환호성을, 지면 처절한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향한 곳이 자주 가던 분식집이었습니다. 후덕한 인상에 손이 크기로 유명했던 주인은 우리가 갈 때면 참 넉넉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순대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순대를 썰어 한 접시에 담고 나면 “떡볶이는 덤이다.”며 떡볶이 한 접시까지 테이블에 올려놓아 주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껏 에너지 소비 후 먹는 순대며 떡볶이는 꿀맛이었습니다.
“그래, 오늘은 거기서 봐야겠다.” 해가 부쩍 짧아진 가을 저녁이라 다시 쌀쌀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든든하게 입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몸은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가 보이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참 오랜 만이지?” “그래, 한 2~3년 지났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러게.” “어디로 갈까?” “오늘은 특별한 곳으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친구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어서 향한 곳은 근처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었습니다. 옛날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좋은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강렬한 불빛이 주변까지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뭐 먹을래? 순대? 떡복이? 아니면 어묵?” 생각지도 못한 곳이라는 듯 친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옛추억이 떠오른 듯이 말이지요.
우리는 순대며 떡볶이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습니다. “우리 대학생 때 추억 소환시간이었다.” “그러네.” 친구는 그때의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듯싶었습니다.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대학생 때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어 참 흐뭇했습니다. 이야기꽃은 그 후로도 한 시간은 이어졌습니다. 쌀쌀한 가을 밤 공기는 잊고 있었던 추억의 세포들을 살려내는 힘을 가진 듯합니다.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이 생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작지만 큰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내 마음 속에는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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