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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48

[에피소드] 치약 주말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일은 아니다. 소소하지만 왠지 뿌듯할 것 같은 일이다. 사전 작업 차원에서 어제는 책상을 정리하며 꼭꼭 숨겨져 있던 녀석들을 싹 다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내일은 꼭!’이라며 다짐했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부지런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들었던 것이 잠깐 후회되었다. 가위를 찾았다. 칼보다는 가위가 편할 듯싶었다. 금방 나타날 것만 했던 가위는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엔 그렇게 쉽게 보이던 물건이었건만 정작 필요한 때는 애를 먹인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커터 칼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 쓴 치약을 집어들었다. 오늘 특별한 일의 주인공이다. 다 쓴 치약 튜브는 4개가 되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2025. 10. 16.
[에피소드] 재활용 세탁 비닐 커버 1년 전인가로 기억한다. 모 단체에서 지구를 살리자는 차원에서 ‘일회용 세탁 비닐 커버 안 쓰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나는 재활용 세탁 비닐 커버 2장을 얻게 되었다. 그전에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세탁소에 드라이 클리닝을 하기 위해 옷을 맡기면 사장님은 투명 비닐을 씌워 건네주고는 했다. 집까지 이동하는 순간 세탁된 옷에 행여 불상사라도 생기는 것을 막아주기 위한 사장님의 따스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약품 냄새를 빼기 위해 일회용 세탁 비닐 커버를 젖히고, 밖에 있는 빨랫줄에 옷을 거는 것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 냄새가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일회용 세탁 비닐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일회용 비닐을 씌워 옷장에 보관할지를 고민.. 2025. 9. 29.
[에피소드] 물 조용한 산중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시원함을 넘어 상쾌함마저 준다. 맑디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물은 모든 동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없어서 안될 고마운 존재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물이 우리의 몸에도 큰 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비빌 틈도 없이 정수기로 향한다. 머그컵을 하나 들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두세 번 씻은 머그컵을 더운 물에 먼저 데우고 다시 찬물을 받는다. 그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이 된다. 한모금을 마시고 나면 온몸으로 물이 금세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모터를 달고 물 속을 재빠르게 헤엄쳐 다니는 잠수함처럼 혈관 곳곳을 재빠르게 누비는 것이다. 다시 한 모금을 입 안에 담고 잘근잘근 씹어본다. 액체인 물이 부서질 게 뭐가 있을.. 2025. 9. 15.
[에피소드] 엘리베이터 교체 한 달 전부터 엘리베이터 내부에 엘리베이터를 전면적으로 교체하니 이런저런 준비를 미리 해두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번 설치로 끝나는 줄 안 것이 커다란 실수였나 보다. 그래서 신축 아파트는 어디에나 두 개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설치되어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니 엘리베이터가 한창 수리 중이다. 엘리베이터 수리 전에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이런 일이 있었다. 이제는 점점 힘이 들고 숨은 더 가쁘게 차오른다. 아침을 빵 하나에 두유로 때우고 점심식사 바로 전이라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을 쉬고 올랐는데도 정신은 혼미하고 숨이 가빠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간신히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쓰러질 듯 누워 한참 뒤에야 일어나고부터는 시.. 2025. 9. 5.
[에피소드] 도자기 머그컵 전화가 왔다. 작은 선물을 보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머그컵은 두세 개 있었기에 “괜찮습니다. 굳이 안 보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하고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꼭 보내주겠다고 하여 주소를 불러주었다. 이틀쯤 지나 택배 문자가 왔다. ‘문 앞에 두고 갑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제법 큰 박스가 있었다. 칼을 칼집에서 꺼내어 테이프를 잘랐다. 에어캡 포장재가 보었다. 에어캡을 들어내자 하얀색 충격완화 포장재가 보였다. 꼼꼼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포장재까지 옆으로 치우자 다시 작은 박스가 나왔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 친구가 주었던 선물이 생각났다. 커다란 박스였기에 은근히 기대하면서 뚜껑을 열자 작은 박스가 나왔다. 그 박스 뚜껑을 다시 열자 또 다른 박스가 나왔다. 여러 번 뚜껑 열기를.. 2025. 8. 25.
[에피소드] 노각 철 지난 밭에서 가끔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다. 길게 줄기를 뻗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던 오이며 호박이며 가는 길을 멈추고 잎이 노랗게 변해 갈 때, 수많은 풀들 사이로 여름 내내 햇볕과 달빛을 받으며 자라났던 호박이나 오이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막 자라나는 풋풋하고 신선한 오이와 다르게 파란색은 온데간데없고 노랗게 온몸을 감싸 안은 모습은 수만 년 세월이 쌓여 노란 황금이 만들어진 것처럼, 모든 것이 한꺼번에 농축된 느낌마저 든다. 보통 오이의 두세 배 크기와 굵기는 여름을 오롯이 받아낸 위엄과 자태가 느껴진다. 늙은 오이, 즉 노각 하나만으로도 한 끼 밥상은 충분히 풍족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노각을 두 팔로 안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개선장군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큰 일이라도 .. 2025.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