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피소드125

[에피소드] 고등어구이 국민 생선이라는 고등어가 오늘 밥상에 올라와 있다. 물이 좋아서 사 왔다는 고등어자반이 참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두툼하게 오른 살이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도 않았는데도 프라이팬에 붙지 않고 뒤집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엄마의 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요리는 맛만 있으면 된다고들 하지만, ‘보기가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예쁜 모양으로 담아내고 싶은 것은 요리하는 사람들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노릇노릇 익은 고등어는 군침을 삼키게 만들기는 하지만,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는 단점이긴 하다. 고등어의 비린 향이 옷에 밸까 봐 고등어구이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알고 있다. 후드를 켜도 냄새를 다 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고등어구이를 한번 맛보고 나면 또 먹고 싶은 유혹을.. 2023. 3. 21.
[에피소드] 즐기면서 봉사하겠습니다 만 보를 달성하려고 역 광장을 지나니 복지관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치매 예방 도우미와 디지털 교육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다. 그 앞에서 바로 전화를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더니 방문해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다음날 재차 문의했더니 치매 도우미는 신청자가 많으니, 디지털 도우미로 신청하면 어떠냐고 한다. 나이를 고려하니 떨어질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밑져야 본전인데 가보는 게 좋잖아.”라고 하는 말에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섰다. 옆 동네라지만 거리가 있어 전철을 한 코스 타고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 후문이라 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려고 정문으로 돌아갔다. 10여 분을 돌아가는데 졸업생을 만나서 학교의 근황을 들으면서 거니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졸업식 때 본.. 2023. 2. 23.
[에피소드] 총각김치 오늘 저녁 식탁에는 고등어조림, 배추김치, 멸치볶음, 그리고 총각김치가 놓였다. 오랜만에 보는 총각김치에 젓가락을 먼저 갖다 댔다. 빨간 양념이 잘 밴 총각김치는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특히, 엄마의 요리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는 김치가 알타리 김치라 기대가 더욱 컸다. 꼬마 시절, 알타리 김치를 먹게 될 때면 커다랗게 이어진 총각무와 이파리를 엄마는 분리해주셨다. 총각무는 한입 크기에 들어갈 정도로 잘라 따로 담아주시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총각무보다는 총각무의 이파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왜 하얀색의 무보다 이파리의 파란색이 더 좋았을까? 그런데 비단 나만 그런 거 같지는 않았다. 우리 형제들 혹은 반 친구들도 총각무보다는 이파리를 좋아했었다. 고등어조림을 밥 위에 얹고 커다란 총각무를 하나 집어 들.. 2023. 2. 7.
[에피소드] 뽀얀 국물 겨울에는 뼈를 푹 고아 진한 국물 한 사발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옆집 아저씨가 잡뼈 몇 개를 나누어 주셨다. 사골이나 족을 사려고 했는데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그보다 저렴한 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사골에는 못 미치지만 잡뼈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만 받겠다고 몇 번을 거절했지만, 아저씨는 한사코 내 손에 뼈가 담긴 봉투를 쥐여 주셨다. 이웃은 콩 반쪽 나누는 사이라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피력하셨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라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엄마라도 곁에 계시면 물어보던지, 아니면 엄마가 하시는 것을 지켜볼 텐데 엄마는 누나네로 놀러 가신 터라 내 스스로 해야만 되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냉동실에 밀어놓고 엄마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문을.. 2022. 12. 29.
[에피소드] 내복 12월에 접어들자마자 몰라보게 추워졌다. 한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간다는 보도를 듣고 외출을 하려다 문밖으로 서너 걸음 떼다가 도로 들어와야 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시베리아 바람 저리가라였다. ‘진짜 영상이 맞는 거야?’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엄마도 한마디를 거드셨다. “그것 봐라. 오늘 추울 거라 했지?”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추위와 맞서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롱 패딩으로 온몸을 감싸 안은 후에 다시 신발을 신었다. 중무장을 한 탓일까? 온몸이 후끈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찬바람도 마주치자 옷 속 이곳저곳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팔짱을 끼며 최대한 온몸을 움츠렸다.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보려 애썼다. 12.. 2022. 12. 7.
[에피소드] 밤 가을을 담뿍 안은 커다란 밤이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을 오롯이 담아 색깔도 단풍빛을 담은 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를 맞이한 것이다. 벌레가 많아 농약을 많이 친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밤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실제로 씨알이 굵은 밤을 비싼 가격에 주고 사도 한 소쿠리 찌면 10열에 한두 개는 밤벌레를 발견하곤 실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찬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늦은 오후에 횡단보도 앞에 자리를 깔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한참동안 자리를 지켰을 아주머니를 생각하니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선행이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였지만 이미 마음은 거기로 가 있었다. 직접 쓴 글씨로 5,000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릇에 가득 담긴 밤을 보니 그 정도가 5,000원어치라는 .. 2022.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