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39 [에피소드] 도심 속 피서 올여름은 유난히 더운데다 열대야가 극성을 부린다. 잠자리에 들 때는 거실에 놓인 에어컨이 방을 커버하지 못하기에 선풍기를 두 시간 정도 켜 놓으면 그런대로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다. 밤 10시를 넘겨도 32도에서 33도니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잠자기에 좋다는 것을 먹기도 하고 운동도 해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피서를 갈 데도 마땅치 않아 난망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들네를 오가는 아내가 “그 아파트는 대단지라서 없는 부대 시설이 없어. 찜질방과 수영장도 있으니 피서를 그곳으로 갑시다.” 마침 아들 내외가 며칠 간 지방을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손자손녀만 있다. 딸에게 연락해 어린이집 방학 중인 손자와 동참하도록 했다. 10레인인 수영장은 길지도 좁지도 않고 깊이도 적당해서 .. 2024. 8. 6. [에피소드] 두부 퇴근하다가 두부가 먹음직스러워 보여 두부 한 모를 더 샀다면서 후배가 건네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봉지 손잡이 위로 따스한 열기와 함께 고소한 내음이 올라왔다. “나는 여기서만 두부를 사요. 한번 드셔 보세요.” 자신 있는 어조로 눈에 힘까지 주면서 말하던 그 진지한 얼굴이 진심임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봉지를 열어 따끈따끈한 두부 한 쪽을 입에 넣어 보았다. 부드럽고 고소함이 입 안 가득 번져 나갔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두부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따스한 두부가 왠지 다른 음식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커다란 크기의 두부는 일반 마트의 두부의 1.5배 크기와 함께 속이 꽉 찬 모습이 두부를 만드는 장인의 야무진 솜씨가 그대로 녹아져 있었다. 무얼 한번 만들어 볼.. 2024. 7. 30. [에피소드] 콩나물 TV를 재미있게 보고 있을 때 엄마는 방문을 열고 쟁반을 하나 쓱 밀어 넣으셨다. 쟁반 위에는 콩나물이 가득했고 빈 그릇 하나가 콩나물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목장을 하시다 보니 돌아서면 할 일이 생겼다. “콩나물.”이란 단어만 남기고 잽싸게 방문을 닫으셨다.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는 쟁반 위의 콩나물이 알려주었다. 손가락 서너 마디 되어 보이는 콩나물이 가득했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실 모양이었다. 쭉쭉 뻗은 콩나물에서 손질할 게 뭐가 있겠느냐 생각했지만, 막상 콩나물을 집어 들어 보니 엄마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잔뿌리들이 많았다. 콩나물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가장 좋은 식자재를 꼽으라고 하면 콩나물을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 2024. 5. 30. [에피소드] 약과 전통과자를 만드는 가게를 지날 때면 잠시 머뭇거리게 되곤 한다. 수많은 종류의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약과다. 말랑말랑 쫀득쫀득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 안에 들어가면 닿는 감촉 또한 즐겁다. 약과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는 없다. 학교 옆 문방구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호기심에 산 것이 계기일지 모른다. 아니면,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 녀석이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약과를 꺼내다 혼자 먹기가 멋쩍어 반을 갈라 준 것이 약과와의 첫 만남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는 않다. 약과를 알게 되면서 약과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가격에 부피가 큰 봉지에 담긴 과자와 약과를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약과를 짚곤 했다. 크기와 중.. 2024. 4. 30. [에피소드] 계단 봄이 오면서 가장 먼저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창문을 열어 보니 봄 기운이 완연해 신발을 꺼내 신었습니다. 외투를 걸치고 신발끈도 단단히 동여매었습니다. 겨우내 하지 못했던 등산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산내음이 코 끝에 퍼지면서 오르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던 산길은 얼다녹다를 반복했던 탓인지 가지런히 놓인 나무계단들이 이리 깎이고 저리 비틀어져 한발한발 내놓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언젠가 산길을 걸으면서 이 높은 곳까지 과연 이 무거운 것을 들고 올라왔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 차곡차곡 놓인 계단은 사람들의 정교한 솜씨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내지 못했을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꽤 많은 계단을 밟고 또 밟.. 2024. 3. 26. [에피소드] 커피 자판기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커피 자판기가 사라졌다. 도서관을 가면 동전 몇 개를 집어넣고 달달한 커피를 먹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커피 자판기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화분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코로나 확산으로 왠만한 공공기관의 문이 굳게 닫히고 다시 연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벌어진 일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도서관 전체를 둘러보았다. 다른 곳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실망감으로 마무리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매점까지 철수한 것을 보면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 업자도 많이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한 집 걸러 커피 매장이 생기다 보니 커피 자판기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가까운 편의점을 들어가면.. 2024. 2. 28. 이전 1 2 3 4 5 6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