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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39

[에피소드] 갓김치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김치들을 하느라 엄마는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셨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김치 양념을 넣고 빨간 고무 장갑을 낀 손으로 쓱쓱 버무리고 나면, 맛깔 나는 양념이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채 썰은 무,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다진 파, 설탕, 액젓 등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양념들이 빨갛게 하나의 옷으로 갈아입고 김치가 될 재료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절임 배추를 만나 배추 사이 사이로 스며 들면 걸작품 포기김치가 탄생한다. 엄마는 더 맛있게 한다고 철에 따라 굴을 사다 넣기도 했고, 어떤 때는 황새기젓을, 살이 통통 오른 새우젓을, 시원한 맛을 추가한다며 배나 사과를 갈아 넣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렇다 보니 익지 않은 김치도 그런대로 맛을 내기도 했지.. 2024. 11. 28.
[에피소드] 비눗방울 비눗방울이 꿈과 희망을 안고 날아오른다. 하늘과 가까워지고픈 마음을 안고 두둥실 떠오른다. 문구점에서는 비눗방울 세트를 팔았다. 둥그런 고리를 가진 막대기와 비눗물이 담긴 병이었다. 비눗물 속에 푹 담그고 나면 둥근 고리는 비눗물에 젖었고 ‘호’하며 불어대면 여러 개 비눗방울이 만들어지곤 했다. 어린 동생들은 날아가는 비눗방울을 향해 두 팔을 공중에서 휘휘 저어 댔다. 그러면 나 잡아보란 식으로 비눗방울은 더 높은 곳으로 줄행랑을 쳤다.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비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눗방울이 다 사라지자 동생들은 “또! 또!”를 외쳤고 다시 한번 병 깊숙한 곳까지 집어넣고 막대기를 꺼내 들었다. 더 많은 비눗방울이 만들어졌다. 둥근 고리만으로 비눗방울이 만들어지는 게 그때는 신기하다는 생각을 .. 2024. 10. 31.
[에피소드] 송편 이야기 추석에는 동네에서만 아니라 근동에서도 할아버지께 인사 오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독자에다 아들만 다섯이어서 일할 사람이라곤 어머니 한 분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우리에게 심부름과 잔일을 많이 시키셨는데, 이번에는 송편을 같이 만들자고 하셨다. 어린애부터 고등학생인 나까지 끌어들이자니 아무래도 당근이 필요했다. 말 잘 듣고 끝까지 송편을 빚으면 감추어둔 오징어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마당 가운데에다 평상을 놓고 둥글게 앉아 가을하늘을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를 보며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떼어낸 멥쌀 반죽을 양손으로 비벼 새알처럼 둥글게 만든 뒤, 손가락으로 구멍을 파고 그 안에 깨나 콩 등의 소를 넣고 송편을 빚었다. 처음 각오와는 다르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트.. 2024. 9. 30.
[에피소드] 시골길 추석을 몇 주 앞두고 성묘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보통은 1주일 전에 가는 게 통상적이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될 거란 장기 예보를 접하다 보니 다소 시원한 날로 잡기로 한 것이다. 주말에는 시골에도 사람들로 붐빌 거는 생각에 평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낫을 꺼내 숫돌 위에 갈기 시작했다. 1년에 한두 번만 사용한다는 게 아까워서 기름까지 칠해 신문지에 돌돌 말아 보관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여기저기 약간의 녹이 들어 있었다. 선산까지는 커다란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다가 비포장되어 있는 샛길로 접어 들어야 닿을 수 있었다. 차를 가져 가면 주차하기가 참 애매한 곳이라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 시간 30분 동안 버스가 쉼 없이 달렸고 터미널에서 내려 한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20여.. 2024. 9. 26.
[에피소드] 오이지 여름나기에 필요한 음식들은 많이 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책임지는 삼계탕이 있기도 하지만,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며 입맛을 돋우는 장아찌 음식도 한 몫을 크게 한다. 특히, 여름에 담그는 오이지는 여름철을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는 보약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햇살과 이슬의 힘으로 큰다는 오이는 여름철의 대표적인 채소다. 그래서 오이를 오래 먹어 보고자 선조들이 고안해낸 음식이 오이지인 듯싶다. 한참 맛있는 시기에 담가야 두고두고 맛있는 오이지를 먹을 수 있다면서 참 부지런하게 오이를 담그던 어머니의 손길은 아직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튼실한 다다기 오이로 해야만 물러지지 않는다며 20~30개 오이를 운반할 때도 조심조심을 강조하던 어머니의 말씀에 오이가 잔뜩 담긴 보자기를 몸에 딱 붙이고 한.. 2024. 8. 29.
[에피소드] 망고가 좋아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사과가 어느새 금값이 되면서 멀리한 지도 오래다. 수입품인 오렌지와 바나나로 대체했다가 요사이는 맛이 든 참외를 먹게 되어 사과에 대한 아쉬움을 다소나마 덜게 되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딸네 집에는 손자의 재롱이 보고 싶어 매달 두 번씩은 다녀온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를 보기 위해서는 오후 느지막하게 가는 게 정석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는 게 그리도 좋은지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면서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식사를 하고 나서 과일을 깎아내면 기다렸다는 듯 포크로 찍어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순으로 주고 나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것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행동 중의 일부다. 그러던 것이 망고를 맛보고부터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망고와 오렌지를 쟁반에.. 2024.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