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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시골길

by 앰코인스토리.. 2024. 9. 26.

사진출처 : 크라우드픽

추석을 몇 주 앞두고 성묘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보통은 1주일 전에 가는 게 통상적이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될 거란 장기 예보를 접하다 보니 다소 시원한 날로 잡기로 한 것이다. 주말에는 시골에도 사람들로 붐빌 거는 생각에 평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낫을 꺼내 숫돌 위에 갈기 시작했다. 1년에 한두 번만 사용한다는 게 아까워서 기름까지 칠해 신문지에 돌돌 말아 보관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여기저기 약간의 녹이 들어 있었다. 선산까지는 커다란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다가 비포장되어 있는 샛길로 접어 들어야 닿을 수 있었다. 차를 가져 가면 주차하기가 참 애매한 곳이라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 시간 30분 동안 버스가 쉼 없이 달렸고 터미널에서 내려 한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20여 분을 달리고 나서야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원한 날을 고른다고 골랐는데도 12시로 향하는 햇살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밀짚모자라도 하나 챙겨 올 걸 하는 후회가 들고 아스팔트를 얼른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폭이 1m 남짓되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차 소리마저 점점 멀어져 갔다. 울퉁불퉁한 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길가나 길 중앙에는 생명력이 강한 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참 오랜만에 밟아 보는 흙길이었다. 길과 멀어질수록 나의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시골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방과 후면 같은 방향에 사는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고개를 넘을 때면 한참 동안 이런 시골길을 걸어야 했다. 혼자면 외롭고 쓸쓸했을 수 있었던 길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길에서 늘 이야기꽃을 피우기 일쑤였다. 힘들 때는 나무그늘에서 쉬어 가기도 했고, 목이 마를 때면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 덕분에 시원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때로는 지나가는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기도 했다. 비가 올 때마다 질퍽해진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정말 어려웠다. 장화라도 챙겨 오는 친구들은 물 웅덩이까지 용감하게 밟고 갈 수 있었지만 하얀 운동화라도 신고 가는 날에는 운동화에 흙이나 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100여 m를 지나고 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운 날씨에 흘리는 땀을 멈추게 해줄 수는 없지만 한 줄기 지나는 바람에 청량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고요하고 적막해진 시골길에는 풀 냄새와 나무 냄새가 진하게 베어 나왔다.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산딸기와 까마중나무도 보았다.

 

산딸기는 언제 열매를 맺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면 빨간 산딸기 열매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짙은 까마중 열매의 색을 보자 잘 익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도시로 이사하고 나서도 길거리에 자라는 까마중 열매를 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어릴 적에는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허기가 질 때면 배를 채우던 고마운 열매였지만 도시 공해에 찌들어 있는 까마중 열매는 먹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굵은 알을 한 웅큼 따서 입에 털어 넣었다. 달콤한 맛이 가득 퍼졌다. 산딸기도 가시를 젖히고 몇 알 따서 먹어 보았다. 달았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맛이라는 것을 온몸에서 알아차리고 있었다. 엄마 품 속 같은 포근하고 편안함이 밀려왔다. 상상하지 못한 행복을 찾은 기분이었다.

 

투박하고 모나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이지만 따스한 마음이 스며 있고, 다소 불편하지만 정겨움이 숨쉬고 있으며,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어도 산과 들과 새와 나무와 풀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질 수 있다.

지치고 힘들어질 때면 이렇게 한적한 시골길에서 한번 걸어 봐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