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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콩나물

by 앰코인스토리.. 2024. 5. 30.

사진출처 : 크라우드픽

TV를 재미있게 보고 있을 때 엄마는 방문을 열고 쟁반을 하나 쓱 밀어 넣으셨다. 쟁반 위에는 콩나물이 가득했고 빈 그릇 하나가 콩나물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목장을 하시다 보니 돌아서면 할 일이 생겼다. “콩나물.”이란 단어만 남기고 잽싸게 방문을 닫으셨다.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는 쟁반 위의 콩나물이 알려주었다. 손가락 서너 마디 되어 보이는 콩나물이 가득했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실 모양이었다. 쭉쭉 뻗은 콩나물에서 손질할 게 뭐가 있겠느냐 생각했지만, 막상 콩나물을 집어 들어 보니 엄마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잔뿌리들이 많았다.

 

콩나물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가장 좋은 식자재를 꼽으라고 하면 콩나물을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 오면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른 물건과 부대끼다 보면 여기저기 상처가 생긴다. 더군다나 근육이나 뼈가 없는 식물에 오로지 가냘픈 줄기로 머리와 뿌리를 지탱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는 큰 마음먹고 콩나물을 길러 보리라 결심하신 게 그쯤이었다. 물만 잘 주면 키우기도 쉽다는 말에 무작정 콩나물 키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콩나물에 신물이 날 정도로 자주 먹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콩나물도 자주 다듬게 되었고, ‘콩나물’이란 한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이심전심이 될 수 있었다.

 

콩나물 시루에 보자기를 얹고 불린 콩을 얹은 후 하루에 서너 번씩 물을 주었다. 햇빛이 들지 않게 까만 천으로 시루 위를 덮어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했다. 모든 게 호기심이 될 나이에 콩나물 키우기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깨면서까지 집에 빨리 가고픈 이유였다.

 

“까만 천을 자주 열어보면 햇빛 들어가 색깔 변해.” 엄마의 잔소리에도 궁금증을 참을 길 없어 가방을 내려놓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뿌리가 나오는 싶더니 다음날 보면 키가 커져 있었다.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자라는 콩나물을 보면서 쉬는 날에 엄마를 졸라 내가 흠뻑 물을 주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콩나물들은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 시루 밑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마저도 경쾌하게 들렸다.

 

사 먹는 콩나물보다 건강하고 신선한 콩나물을 먹는 것은 반가웠지만, 쟁반 위에 놓여진 콩나물은 잔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엄마는 콩머리는 많으면 좋긴 하지만 요리에 따라서는 모양이 살지 않을 수 있어서 솎아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 마음에 들도록 잔뿌리와 함께 정리를 했다. 빨리한다고 했지만 콩나물 하나하나를 들어서 확인하다 보니 금방 끝날 것 같은 손질도 제법 시간을 끌었다.

 

저녁 식탁 위에 반찬이 가득했다. 특별한 식자재가 없었음에도 엄마표 요리들로 가득 채워진 것이었다. 콩나물 무침, 콩나물 당면 볶음, 콩나물국, 김치와 마른 반찬 몇가지였다. 갓 볶아낸 콩나물 당면 볶음에 식구들의 젓가락이 먼저 갔다. 당면이 미끌미끌하다 보니 젓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갔다. 처음에 집었을 때는 당면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밥그릇까지 도달하고 보니 콩나물이 더 많았다. 아삭아삭한 콩나물과 당면의 보들보들한 식감이 참 잘 어우러졌다. 많은 양념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두 식자재가 만나 기가 막힌 조화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당면은 잡채에만 들어가는 거라는 인식을 바꿔주었던 요리가 콩나물 당면 볶음이었다. 콩나물국의 칼칼하고 시원함과 콩나물 무침의 매콤함이 더없이 저녁 밥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콩나물을 키우지 않는다. 온종일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때 맞춰 물을 줄 수 없어서다. 대신 마트에 가게 되면 제일 먼저 고르는 식자재는 콩나물이다. 정말 많은 양념이나 비법이 없어도 콩나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콩나물을 잘 삶아 쫄면 위에 얹어볼 생각이다. 쫄면과 어떤 하모니를 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