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손모아 장갑

by 앰코인스토리.. 2025. 12. 31.

어느 덧 12월의 추운 겨울이다. 날이 조금은 풀린다고 한다. 그래도 해가 떨어지면 금세 수은주가 뚝 떨어진다.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끝까지 당겨도 사이사이로 밀려드는 겨울바람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나름 두툼하고 보온성이 뛰어난 방한용품이라 하지만, 추위란 놈은 참 잘도 비집고 들어온다.

두꺼운 오리털 외투가 몸통을 보호한다고 해도 손끝과 발끝은 시간이 갈수록 추위를 감당하기는 버겁다. 가죽장갑이 멋지고 보온성이 뛰어나다 해서 큰 돈을 주고 사 본 적이 있다. 눈을 집어 들어도 녹아서 장갑 안으로 스며들지 않아서 활동하기 편했고, 찢어질 염려가 없었으며 바람이 스며들어 오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는 드러나기 마련. 손가락이 시려오는 것은 다른 장갑과 다르지 않았다. 털로 가득 찬 장갑 안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지만, 손가락 끝까지는 방어해주지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정류장에 있을 때면 점퍼 주머니에 장갑 낀 손을 밀어 넣어야 그나마 견딜만 했다. 그렇게 4~5분을 있으면 꽁꽁 얼었던 손 끝에 온기가 도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털실로 짠 장갑을 구해보기도 했다. 털실의 따스한 감촉과 따스함이 다소 오래 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밖으로 나서면 그마저도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외투 주머니 손에 장갑을 넣었다 뺐다를 수시로 반복해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 네 개의 손가락을 모아 놓은 ‘손모아 장갑’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한 친구가 다소 투박해 보이는 손모아 장갑을 끼고 등장했던 것이 계기였을 것이다. 끈으로 한 켤레 장갑을 연결하고 그 줄을 목에 걸치고 등장하는 바람에 친구들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로 쏠렸다. “이게 벙어리 장갑이다.”라며 신나게 자랑을 늘어 놓았던 천진난만한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한번 끼어 볼게.”라며 반 친구들이 한번씩 손을 밀어넣을 때 흐뭇해하던 그 친구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이후 친구들이 손가락 장갑에서 손모아 장갑으로 갈아타기도 했었다.

당시는 왜 ‘벙어리 장갑’이라 불렀는지는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 개의 손가락이 붙어 있어서 따스했기에 명칭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디선가 ‘이제 손모아 장갑으로 부릅니다.’라는 보도를 듣고 이유를 찾아보았다. 딱히 벙어리 장갑으로 부르게 된 확실한 계기는 없었다고 한다. 단지 이런저런 설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비하는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왠지 어감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차원에서 이름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시간은 12월의 마지막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겨울의 품 속으로 계속 스며 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한겨울의 추위와 맞서야 한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 있다. 강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고심을 해야 한다. 그 고심 안에 손모아 장갑도 넣어 놓아야 할 것 같다.

손가락이 함께 모여 힘을 모으면 올겨울은 생각보다 슬기롭게 따뜻하게 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