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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고드름

by 앰코인스토리.. 2026. 1. 27.

사진출처 : freepic.com

한파의 기세가 매섭다. 공기가 정체되면서 한기가 한반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 기상 예보관의 설명이었다. 장갑과 목도리로 중무장을 해도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TV 뉴스에서는 곳곳이 빙판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는데, 약속이 있어서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다.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찾아 신기도 했지만 강추위에는 소용이 없었다. 엉금엉금 한발 내딛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장소에서 보자하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그러다 움츠린 몸을 세웠다. 바짝 긴장한 탓에 몸이 경직되는 것 같아 허리를 제대로 펴고 다시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집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지붕 형태였지만, 지금은 도시 외곽으로 한참은 나가야 볼 수 있는 지붕이다. 얼마 전, 눈까지 온 탓에 지붕에 쌓여 있던 눈이 녹으며 지붕을 타고 내려가다 고드름을 만든 모양이다. 투명하고 맑은 얼음 결정이 눈에 들어왔다. 참 오랜만에 보는 고드름이라 정겨움이 더했다.

 

눈만 오고 나면 소복소복 쌓인 눈 위에 햇빛이 쏟아지고, 한 방울 두 방울 물이 되어 똑똑 떨어졌었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나면 떨어지던 물방울은 헤어지기 싫은 사람처럼 서로서로를 붙잡다가 기다란 고드름을 만들었다. 수정처럼 맑디맑은 고드름을 하나 뚝 떼어 눈에 가까이 대어 보면 티 없이 맑다는 말을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칼싸움을 하자는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드름 하나씩을 잡고 그럴싸한 폼까지 잡아보지만, 서너 번 부딪히고 나면 힘없이 부러지는 고드름에 몸을 풀 새도 없이 칼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짧은 칼싸움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낟가리 더미를 향해 달렸다. 그것은 겨울철 소들의 겨울 간식이었다. 그래서 꽤 높게 쌓아 올려졌다.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꼭대기는 둥그런 지붕 형태를 만들다 보니 거기도 고드름이 자주 만들어졌다. 더욱 맑고 투명한 고드름들이라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런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일까? 고드름을 보면 동생들이 생각나고 눈 덮인 지붕이며 낟가리도 떠오른다.

 

높은 빌딩이 많아지면서 고층에 매달린 고드름은 흉기가 될 수 있다며 소방대원이 출동해서 고가 사다리를 타고 고드름 해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높이에서 소방대원들이 고드름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고드름에 대한 낭만은 한동안 사라졌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는 고드름은 한참 동안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겨울에 대한 풍경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겨울에 대한 용어들도 덜 쓰게 되는 요즘이지만, 맑디맑은 고드름은 시골집 처마와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가끔 고드름이 보고 싶다 느껴질 때면 언제든 그곳에 있으면 참 고마울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