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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39

[에피소드] 뒷도의 추억 명절은 추억이다. 추억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가도 아득한 옛일처럼 가물거리기도 한다. 추석이나 설이라도 물 빠지는 나일론 양말이 유일한 선물이었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들 따라 친척 집을 돌면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우리 세상이었다. 끼리끼리 모여 땅따먹기, 강 건너기, 자치기 놀이를 하다가, 해 그름 판이 되면 남녀 구별 없이 뒷동산으로 모여들었다. 마무리는 언제나 골목으로 편을 갈라 산등성이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이런 자연과 함께하는 놀이를 찾아보기 힘든 손자들을 위하여 고심한 것이 윷놀이다. 역사는 일천하여 겨우 세 번째지만 매회 추억거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보통 윷놀이에서는 넉동이 먼저 나는 팀이 그 판을 이기지만, 며느리의 친정 가는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하여 두 동으로 하고.. 2016. 10. 7.
[에피소드] 라면 오늘 점심은 라면이다. 참 오랜만에 끓인 라면을 먹으려 한다. 한동안 라면을 많이 먹을 때는 하루 삼시 세끼를 모두 라면으로 통일한 적도 있었다. 아침에는 끓인 라면, 점심에는 컵라면, 저녁에는 친구와 함께 라면에 떡볶이를 먹었으니. 하지만 그런 날에는 밤늦게까지 아픈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라면으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맛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고 좋아하는 라면을 포기할 수 없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끓여 먹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법 텀이 길었다. 한 달 동안 라면을 단 한 개도 먹지 않고 있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편의점 도시락이 워낙 좋게 나오다 보니 잠시 라면을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생.. 2016. 9. 23.
[에피소드] 고향을 먹고 컸잖아 이번 달 초순에 친정아버지 팔순을 맞아 고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열 살 때까지 살았던(지금의 친정에서 산골짜기로 6km 더 들어간 오지) 곳이 어떤가 하는 호기심에 남편과 함께 디지털카메라까지 챙겨서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서 있던 느티나무와 정자, 겨울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썰매를 탔던 연못, 아침마다 가장 먼저 가본 연못 옆의 호두나무,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던 우리 집과 엿장수가 올 때마다 진을 치던 집 앞의 넓은 공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60년이 넘은 기와집도 그대로였고, 느티나무도 온전하게 서 있었다. 물론 연못과 호두나무도 50년의 세월에도 꿋꿋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작아 보였던 것이다. 마을에서 가장.. 2016. 9. 16.
[에피소드] 센베이 과자 우리 집 가까이에 아주 유명하고 오래된 명품과자를 만드는 명장의 가게가 있습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 보면, 늘 손님 한두 분이 과자를 고르곤 합니다. 보이는 과자의 종류만도 상당합니다. 일명 ‘센베이 과자’라고 알고 먹던 그 과자가 진열된 모습만 봐도 가슴이 뛰고 설레어옵니다. 어느 날은 하도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들어가 센베이 과자를 입력해 보기도 했습니다. 진짜 내가 알고 있던 센베이 과자라는 명칭이 맞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으며, 만약 그 명칭이 아니라면 정확한 명칭을 알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센베이라는 명칭은 일본 지방의 명칭이었고, 그곳에서 만드는 과자라 하여 ‘센베이 과자’ 혹은 ‘센베 과자’라 부르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드는 방식이 비슷하여 센베.. 2016. 8. 26.
[에피소드] 원두막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엄마의 승낙을 얻어,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난생처음 가보는 길 위 버스 안에서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한 시간여 달린 버스는 무사히 친구가 나와 있는 정류장에 섰고,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그때야 진정되었다. 서너 개의 초등학교가 하나의 중학교로 모이는 탓에, 장시간 버스를 타야 먼 곳에 있는 친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친구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친구네 집은 굉장히 넓은 밭에 참외와 수박을 재배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 파란 이파리 사이사이로 보이는 노란색의 참외는 빛깔이 고왔고, 수박의 파란, 검정 줄무.. 2016. 8. 12.
[에피소드] 설렘 어릴 때의 ‘놀이’라고는 머슴애들은 땅바닥에 여러 개 구멍을 파놓고 돌을 던져 넣거나 자치기를 하고, 계집애들은 줄넘기나 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 남녀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즐기는 게 있다면 숨바꼭질이 유일했다고 기억된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잠자리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 해 질 무렵, 나와 친척뻘인 여동생은 세무서원이 술 단속을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불법으로 제조한 막걸리 항아리를 짚 붓대기 쌓아놓은 곳에 감추어 두곤 했던 그 구멍 속으로 기어들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고서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리며 숨까지 참고 있는데도 심장은 그렇게도 콩닥거렸는지…. 그때의 설렘을 나이 들어서도 자주 회상하곤 했다. 이번에는 손자가 체스판을 들고 나타났다. 거실에 앉자마자 판을.. 2016.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