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아프리카 30일 배낭여행’을 발견하고, 수많은 동물사진을 보면서 미지의 세계에 동참하게 되었다. 70대에 아프리카라. 드넓은 초원에 기린과 얼룩말들이 무리 지어 거닐고, 사자의 표독스러운 모습 옆에 반바지 차림의 친구가 못내 부럽다. 가끔 1박 2일 모임 때도 새벽에 1,111m의 황악산을 단숨에 다녀오던 그였다. ‘대단하다. 몇 년 전부터 생각만 했지, 건강이 걱정되어 나서지를 못했는데…. 신념과 건강이 부럽다.’고 댓글을 달았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제일 앞자리에 들어갔을 아프리카 여행. 그중에서도 사파리 투어는 두고두고 여한이 남는다. 이참에 에버랜드라도 다녀올까. 무료입장권도 있는 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날 부부가 나들이에 나섰다. 여행주간이 끝난 지가 며칠 되지 않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입구는 한산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거나 유치원 이하의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와 연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서 1시간가량을 기다리고서야 사파리 월드를 위한 백호버스에 탑승했다. 여행은 날씨와 가이드의 말솜씨에 따라 기분이 엄청 달라지는 법인데,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미세먼지도 비껴간 날에 따뜻한 데다 구수한 설명 덕에 웃으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뛰어난 소화력을 가져서 죽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하이에나는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힘 좋게 생겼다. 왠지 야윈 것 같은 수컷사자는 사파리 생활이 무료한지 고민이 많아 보인다. 초원을 달리지도 못하고 먹이사냥을 해본 적도 없을 테니 긴장감이 없어서인가. 몸길이가 무려 2m 80cm라는 곰의 덩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래도 운전기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냉큼 받아먹을 때는 날렵하기만 하다.
다음은 로스트밸리. 이곳은 수륙으로 이동이 가능한 버스가 땅 위를 운행하다 물속에서는 모터로 움직인다. 육지를 달리던 차가 배로 바뀌는 순간, 나와 아내는 몹시 시시해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을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프리카 사슴은 가슴팍의 털이 멋있게 보였는데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과시용이 아니라 체온 조절용이란다. 생후 5개월 된 코끼리는 하루에 100kg이 넘는 먹이를 먹는 먹보다. 차가 다가가자 기린은 차 안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큰 혀를 내밀며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게 귀엽기도 하다.
두 곳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이 30분이고 말만 사파리지, 사육하는 동물들이라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무기력한 게 섭섭했지만, 이렇게라도 체험하지 못하면 늘 사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테니 그만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저곳에 높이 설치된 어트랙션 구조물에서 커다란 함성까지 들리지만, 나이든 이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후크선장의 해적선을 타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피터 팬’으로 막혔던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이들과 젊은이 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도 순방향으로 2분 역방향으로 2분이 다였으니 여전히 2%가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낙하 각도에서 즐기는 스릴 롤러코스터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도 한창때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두 번이나 입장해서 저보다 더한 스릴도 체험했다는 추억을 되살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8시 45분에 집을 나서서 돌아오니 오후 6시 45분, 직장시절의 일과를 보낸 셈이다. 에버랜드에서 보낸 4시간 반을 제하면 5시간 반을 차를 타고 버텨서 피곤할 듯도 하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 탓인지 평소보다 더 가뿐한 하루였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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