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39 [에피소드] 하모니카 하모니카 소리가 생각나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그림부터 떠오른다.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만발한 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뒷동산에 철수와 영희의 정다운 모습이 보인다. 철수는 다리를 꼬고 누워서 하모니카를 불고 영희는 오른팔로 얼굴을 받치고 부러운 듯이 철수를 바라본다.’ 그 당시 도회지로 유학 갔다가 일요일을 맞아 찾아온 고등학생 형이 하모니카로 교과서에 실린 동요를 부르면 달달 떨리는 반주에 반해서 꼬마들이 따라다니곤 했다. 어머니를 졸라서 자그마한 연습용 하모니카를 손에 쥐었지만 워낙 음정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서 연습만 하다가 그만둔 것도 기억난다. 지난번에 온 손자가 “할아버지, 친구 집에서 하모니카 불어봤다. (양손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이렇게 잡아서 숨을 내불고 들이마셨더니.. 2016. 5. 16. [에피소드] 선생님의 메일 나에게는 오래된 메일 친구가 있다. 때로는 엄마 같고 때로는 누나 같고 또 어떨 때는 친구 같은 메일 친구다. 오랫동안 많은 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선생님께서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큰 키에 예쁜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좋은 성격에 반 남자아이들의 우상이시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선생님과 참 많은 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우리가 사는 곳이 수도권에 인접해 있는 섬이었고 전적지로 유명했던 곳이라,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때가 되면 선생님을 졸라서 낚시도 갔었고, 가을에 산천초목이 예쁘게 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까운 뒷산으로 올랐었고,.. 2016. 4. 21. [에피소드] 원래 이렇게 잘 보였어? 손자가 작년부터 가끔 눈을 찡그리더니,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안경을 맞춘 모양이다.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3대의 남자가 안경을 쓰게 된 것이 나로 인한 것 같아서 속이 아린데, 어린 나이에 안경을 끼고 밖에 나와서 했다는 첫 마디가 “원래 이렇게 잘 보였어?”라는 전언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해서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비율이 초등학생은 30% 정도고 중고등학생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지라도 60명이 넘는 한 반에 안경 쓴 동기가 3~4명에 불과했던 1960년대. 안경으로 인하여 내가 겪은 고초를 되새기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 독성을 띤 구름처럼 주위를 맴돈다. 중학생 때.. 2016. 4. 7. [에피소드] 징크스 친구를 만나 저녁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참 술기운이 무르익을 무렵, 친구는 대뜸 나에게 “그 옷은 소매가 많이 닳았는데 이제 버려도 되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순식간에 들통이 난 것처럼 나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괜한 것을 물어본 듯 겸연쩍어하며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려 할 때, 나는 짧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징크스 때문이야!” 그러고 나서 나의 징크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왜 저런 누더기 같은 옷을 버리지 않고 계속 입고 있는지가 참 많이 궁금했었던 모양이고, 어떻게 나에게 질문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갈등했었다고 합니다. 다 듣고 난 그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야구를 시청하면서 참.. 2016. 3. 28. [에피소드] 기쁨 반 우려 반 아내는 여러 해 동안 아파트 통장 일을 보고 있다.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확인받는 통지서와 고지서가 여러 종류지만, 가족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유일하다고 한다. 아들로부터 손자의 취학을 알리는 통지서를 메일로 받았다. 내가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은 망각하고 손자가 이만큼 자랐다는 게 대견하고도 뿌듯하다.2016년 3월 2일 11시에 모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있음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교육 1번지이고 학원 수가 가장 많은 데다가 고액과외까지 성행하는 지역이라 기쁨 반, 우려가 반이다. 손자의 장래는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지만 우린 양쪽 모두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만 하여도 동네 교육여건이 열악하여 며느리 직장이 있는 여의도에 새로운 둥.. 2016. 1. 11. [에피소드] 빨래 냄새 우리 집은 볕이 잘 드는 옥상이 있다. 여름철 한낮에는 강렬한 태양 볕에 물이 줄줄 떨어지는 빨래를 빨랫줄에 턱 올려놔도 서너 시간이면 물기는 온데간데없고 빨래들이 바짝 말라 버린다. 5층 건물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 높은 건물들이 없다 보니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통 햇살 천지가 된다. 그래서 아는 지인들이 오면 빨래 하나는 정말 잘 마르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가을이 지나고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져 여전히 낮에는 빨래를 말릴 기회를 주고 있다. 어느 날인가, 비가 오는 때 빨래를 한 적이 있다. 30여 분 신나게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탈수까지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나서 베란다로 갔는데 아직 젖은 빨래들이 빨래 건조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옥상은 비가 와서 널.. 2016. 1. 5.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