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46 [에피소드] 설렘 어릴 때의 ‘놀이’라고는 머슴애들은 땅바닥에 여러 개 구멍을 파놓고 돌을 던져 넣거나 자치기를 하고, 계집애들은 줄넘기나 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 남녀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즐기는 게 있다면 숨바꼭질이 유일했다고 기억된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잠자리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 해 질 무렵, 나와 친척뻘인 여동생은 세무서원이 술 단속을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불법으로 제조한 막걸리 항아리를 짚 붓대기 쌓아놓은 곳에 감추어 두곤 했던 그 구멍 속으로 기어들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고서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리며 숨까지 참고 있는데도 심장은 그렇게도 콩닥거렸는지…. 그때의 설렘을 나이 들어서도 자주 회상하곤 했다. 이번에는 손자가 체스판을 들고 나타났다. 거실에 앉자마자 판을.. 2016. 8. 5. [에피소드] 그 여름의 힐링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서인지, 시골 그것도 오지 중의 오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여름이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 당시만 해도 농촌은 농사일로 분주해서 피서나 휴가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여름철이 되면 피서 못지않은 우리만의 힐링은 분명히 있었다.이때는 방학이라 유일한 숙제인 일기는 날씨만 기록해 놓고 (방학을 하루 이틀 남겨놓으면, 아침 먹고 세수하고 심부름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한꺼번에 작성했다) 부모님께 잡히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으므로 아이들은 약속이나 하듯, 저마다 아침만 먹으면 일찌감치 집을 벗어나곤 했다. 장난감이나 휴대전화가 없어도 주위는 온통 놀 거리였다. 나무마다 손만으로도 잡을 수 있는 매미가 지천으로 노래 부르며 우리를 반겼고, 이 놀이에도 .. 2016. 7. 15. [에피소드] 뱃살 하루에 여덟 시간은 의자에 앉아 생활하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뱃살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탓에 편한 복장을 선호하게 되었고, 고무줄이 있는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게 되었다. 그래서 뱃살이 나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같다. 어느 날이었다. 지인 결혼에 가기 위해 양복을 꺼내 입게 되었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 넉넉했던 허리둘레가 단추를 채우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만 것이었다. 심각해진 상황을 직감하게 되었다.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올챙이 배 아저씨를 조금씩 닮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 되겠구나! 운동을 시작해야겠네.’ 다부진 마음으로 그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으로 빠르게 걷기 운동을 했다. 거의 2km 거리를 쉬지 않고 걸었다. 예전에.. 2016. 7. 1. [에피소드] 자존심이 뭐길래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로변에 소공원이 조성되었다. 600평 정도의 넓이에 나무도 심고 여러 모양의 의자도 갖추었다. 개장기념으로 벼룩시장도 열고, 밤에는 무료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월드컵 중계 때는 응원의 함성이 새벽하늘에 진동했다.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오후가 되면 열기를 피해 나온 노인네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다. 개별적으로 나온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는데, 할아버지들은 같은 의자에 앉아도 나 몰라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지만 늙어가면서 왜 이렇게 달라지는지가 못내 궁금해서, 할머니들의 옆자리에 앉아 사연을 들어 보았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있나요?”올해부터 경로카드를 받아서 전철도 공짜로 타고 다닌다는 할머니는 “이 사람이 방금 손자 이야기를 꺼내기.. 2016. 6. 16. [에피소드] 끝이 좋으면 다 좋아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기분 좋은 상상은 무참히 깨져 버리기 시작합니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에 손가락이 살짝 끼게 됩니다. 피도 나지 않고 상처도 나지는 않았지만 살짝 낀 듯한 손가락은 이내 아파집니다. ‘조금만 조심할 걸!’ 중요한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허둥댄 것이 실수였습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손가락이 아파집니다. 서둘러 도착한 약속장소에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데 전화가 울리지요. “미안해. 한 시간 정도 늦어질 거 같다. 이해해줘. 오늘은 내가 아이 유치원에 보내는 날이라서.”라는 이유를 달았는데 한숨만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작 알려 주지!” “깜빡했어.” 하늘이 노래.. 2016. 6. 9. [에피소드] 축구 하면 좋겠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봄 향기가 살살 풍겨오는 토요일 오후, 아들이 이사 간 아파트에서 집들이를 겸한 푸짐한 점심을 먹은 후 손자의 손을 잡고서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인터넷을 통해 학교 사진을 둘러보고 운동장 모습도 가늠했지만, 아파트 사이에 묻혀있는 1,000명가량의 건아를 품고 있다는 교정이 포근하게 다가왔다.손자 뒤를 따라 1학년 교실을 창문 너머로 구경했다. 남아 18명과 여아 14명이 공부하는 곳에는 책걸상이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었고, 입학식 때 아들이 보내준 동영상으로 눈에 익은 대형 걸개그림이 벽면 하나를 채우고 있었으며 그 위에 쓰인 ‘명문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도 그대로 있었다. ‘바늘구멍처럼 추첨되기 어렵다는 사립도 아니고, 시험 쳐서 입학한 곳도 아닌데 명문이라.. 2016. 6. 2.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