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 저녁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참 술기운이 무르익을 무렵, 친구는 대뜸 나에게 “그 옷은 소매가 많이 닳았는데 이제 버려도 되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순식간에 들통이 난 것처럼 나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괜한 것을 물어본 듯 겸연쩍어하며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려 할 때, 나는 짧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징크스 때문이야!” 그러고 나서 나의 징크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왜 저런 누더기 같은 옷을 버리지 않고 계속 입고 있는지가 참 많이 궁금했었던 모양이고, 어떻게 나에게 질문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갈등했었다고 합니다. 다 듣고 난 그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야구를 시청하면서 참으로 의아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투수가 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살짝 뛰어 지나가는 것이었지요. 한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도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궁금해서 인터넷에 질문을 올렸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징크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연속 안타 행진을 하게 되면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은 물론, 속옷도 그 기간에는 갈아입지 않는 선수가 있을뿐더러 경기가 잘 안 되고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잘 치는 선수의 배트를 얻어 슬럼프를 극복하는 예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좋은 상황은 이어져 가길 바라고, 나쁜 상황이 벌어지면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누구나가 똑같은 마음이겠지요.
그 후 나에게도 은근슬쩍 징크스가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생각과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을 겁니다. 49라는 숫자를 피하고자 양치질을 할 때도 왼쪽을 3번 닦고 나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칫솔질하고 물로 입안을 헹굴 때도 3번 아니면 5번으로 마무리를 하지 4번으로 끝내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10번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쉬는 것이지 9번 하고 10번째 쉬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잘못해서 유리컵을 깼다면 그 날은 온종일 불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하나의 행동과 말에 조심 또 조심하는 것도 그때부터 생기게 되었습니다.
소매가 닳은 옷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그 옷만 입고 있으면 무언가 좋은 일이 벌어졌었고 항상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서 스스로 행복감에 젖게 되어 차마 버릴 수 없었다고 친구에게도 설명했습니다. 징크스라는 것은 나를 옳아 매서 행동의 제약이나 심리적인 위축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나의 행동과 말을 조심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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