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62 [에피소드] 두 개의 화분 가까운 동생이 새로운 집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짐이 많지 않아 굳이 올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정이란 게 있어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이사하는 날 찾아갔다. 동생 말대로 짐은 많지 않아, 짐을 차에 싣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의 물건들이 다 빠지자 빈 공간이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는 쓰레기가 담겨진 봉투와 함께 화분 두 개가 보였다. “이건 안 가지고 가니?” “죽은 거 같아서 버리고 가려고요.” 동생의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화분 두 개에는 다육식물이 있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너무 안 되어 보였다.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간다.” “그러세요.” 다소 무미건조한 반응에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사할 때는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라며 동생을 이해.. 2022. 3. 24. [에피소드] 산에 오르다 2월이 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도 한결 줄어든 것 같다.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지만 주말을 그냥 집에서 보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날씨다. 약간은 쌀쌀한 듯하지만 공기의 촉감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뭐를 할까 고민했다. 겨우내 방콕으로 주말을 꽁꽁 싸맸던 나를 좀 풀어주고 싶었다. 신발을 신고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행선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이끌려 갔다. 겨우내내 맛보지 못했던 햇살 한 줌 한 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햇살을 좀 더 많이 담아 보고자 장갑까지 벗어 보았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마을 뒷산 입구에 다다랐다. 이곳은 한때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로 사랑방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널따란 배드민턴 경기장에는 .. 2022. 2. 28. [에피소드] 자연인 요즈음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재방송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다. 무작정 산이고 강이고 섬으로 배낭 하나 메고 그곳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진심과 절박함을 알게 되면서 더욱 끌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은 도시 생활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나서 자연을 찾은 경우가 많았다. 식사를 하고 난 후엔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높디높은 산을 오르며 산나물이며 약초를 발견한다. 귀하디귀한 약초들을 발견할 때는 나의 눈도 번쩍 뜨인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식물인데?’하는 의심을 품는다. 어릴 적 뒷동산에서 보았던 잎사귀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무릎을 ‘탁’ 친다.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하면서 그 오래된 기억을 더.. 2021. 9. 1. [에피소드] 싸리비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연다. 차디찬 찬바람이 순식간에 방으로 밀려 들어온다. 한기를 느낄 만큼의 겨울바람이지만 머리는 맑아진다. 이불을 탈탈 털고 침대보를 깨끗한 수건으로 훔쳐낸다. 간밤에 쌓였던 나쁜 덩어리가 한꺼번에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해서 과연 얼마나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반문을 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저 뭔가 묵은 찌꺼기를 긁어내는 정도라면 만족한다. 영하 10도 이하의 찬바람을 며칠 맛보고 나니 일어나자마자 창을 여는 것을 주저했지만, 오늘만은 아침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줄 정도의 순한 바람이었다. 여전히 밖은 어둡다.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한겨울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무런 소음 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10여 분 지나자 .. 2020. 12. 8. [에피소드] 안경을 벗었다 코로나19의 확진자가 1천 명을 오르내리면서부터는 인적 드문 곳을 한 시간 반 정도 다녀오는 것 말고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마스크만 쓰고 다녀도 안경에 성에가 끼어 고생인데, 영하의 날씨가 되니 자주 안경을 닦던지 안경을 벗어들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다. 이틀간은 두문불출하고 안경을 벗고 다닐 코스와 인적이 드문 시간을 생각하느라 고심했다. 영하의 추위쯤이야 두꺼운 점퍼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고, 오전 10시 반부터 12시가 인적이 드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필수고 안경은 접어 왼쪽 주머니에 넣고 길을 나섰다.시력 검사표 제일 상단에 있는 글자도 식별하기 어렵지만, 횡단보도는 보이고 움직이는 물체는 사람이니 그것만 잘 피해서 다니면 될 것 같다. 가능하면 높낮이가 없는 곳을 택.. 2020. 12. 4. [에피소드] 처마의 길이 초등학교 시절, 주말이면 가까운 절로 청소를 하러 가곤 했다.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1년 365일 끊임없이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다 보니 사찰 주위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수 있기에 우리 고장, 우리 유적지는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로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조를 나누고 선생님의 지휘 아래 맡은 구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절에 대한 관심보다는 청소의 목적으로 온 터라 사찰을 꼼꼼하게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무심코 마주친 것이 사찰의 처마였다. 그리고 그 처마 안에 그려진 갖가지 그림들을 보면서 새삼 놀라게 되었다. 언젠가 만화책 속에 나왔던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왜 저런 곳에 저런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꽤 궁금하기도.. 2020. 8. 27.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