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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안경을 벗었다

by 에디터's 2020. 12. 4.


코로나19의 확진자가 1천 명을 오르내리면서부터는 인적 드문 곳을 한 시간 반 정도 다녀오는 것 말고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마스크만 쓰고 다녀도 안경에 성에가 끼어 고생인데, 영하의 날씨가 되니 자주 안경을 닦던지 안경을 벗어들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다. 

이틀간은 두문불출하고 안경을 벗고 다닐 코스와 인적이 드문 시간을 생각하느라 고심했다. 영하의 추위쯤이야 두꺼운 점퍼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고, 오전 10시 반부터 12시가 인적이 드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필수고 안경은 접어 왼쪽 주머니에 넣고 길을 나섰다.

시력 검사표 제일 상단에 있는 글자도 식별하기 어렵지만, 횡단보도는 보이고 움직이는 물체는 사람이니 그것만 잘 피해서 다니면 될 것 같다. 가능하면 높낮이가 없는 곳을 택해 8분가량 걸으니 곧 전철역이다. 역을 옆으로 끼고 조금 걸으면 4층 높이의 계단이 있고, 그곳을 나오면 철길 위를 덮어 만든 축구장 1.5배 크기의 문화공원이 나온다. 

춥지 않은 날이면 남녀노소들로 북적이지만, 코로나가 있는 데다 추운 오전이라 의자에 앉은 이들은 볼 수가 없고 또래의 노인들만 열 명 가까이 걷고 있다. 곳곳에 그저께 온 눈이 쌓여 있어 불편하지만 발밑만 보고서 열 바퀴를 돌고 오니 걸음만 구천 보를 넘었다. 아내에게 숫자가 찍힌 스마트폰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그제야 안경을 쓴다.

어제는 용기를 내어 야산을 공격했는데, 높낮이가 많고 눈비를 대비해 깔아 놓은 깔개가 발에 걸려 여러 번이나 위험을 감지했다. 겨울 동안은 문화공원만 다니기로 하고 만 보 가까이 채우고 와 있자니 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손자가 할 말이 있다니 들어보세요.”

“할아버지, 오늘 안과에 갔는데 나도 동생처럼 밤에만 렌즈를 끼면 된대요.”

손녀는 밤에만 렌즈를 끼고 낮에는 안경 없이 지내고 있다. 원리는 모르지만 좋은 기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 됐구나. 그렇게 하다가 성인이 되면 수술을 해서 안경을 벗어도 된단다. 잘생긴 손자를 다시 보게 되어 기쁘구나.”

손자‧손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할아버지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