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몸이 근질근질하다며 낚시를 떠나 버린 선배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시원 사무실을 지키게 되었다. 올해도 1주일 동안 긴 여행을 떠난 셈이다. 하루 전날에는 이것저것 당부의 말과 함께 집에서 가져왔다며 김치통을 하나 꺼내 보이며 주방 냉장고에 넣어 달라고 했다.
주방의 커다란 냉장고에는 여전히 세 가지 반찬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선배가 가져온 김치통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어 남겨진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기로 했다. 네 귀퉁이를 열어 김치통 안을 들여다보자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이 양반이 김치를 교체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김치만 주고 갔구먼!’ 낚시 끝나고 돌아오면 한 소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통을 깨끗이 씻고 김치 교체를 하기 위해 선배가 가져다준 김치통도 열어 보았다. 그런데 뚜껑을 여는 순간 냄새가 확 퍼져 나갔다. 순간 코를 막아야 했다. ‘아이구, 셔!’ 김치를 얼마나 묵혔길래 이런 신맛이 날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겨우내내 먹던 김장김치가 김장독에서 거의 바닥을 보일 때면 보이던 그 모습처럼 배추는 맥아리가 없어 보였다.
‘과연 누가 이것을 먹는다고 가져온 거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길래 묵은지가 된 걸까?’ 계속 혼잣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다 버리고 새로운 김치로 사라고 전화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갔지만 깨끗이 닦아 놓은 김치통에는 김치를 담아야 했기에, 일단은 담아 놓고 선배가 돌아오면 다시 얘기해보자는 생각으로 포기김치를 썰기 시작했다.
물컹물컹한 김치를 썰 때마다 쉰내가 나서 마스크를 해야만 했다. 세 포기의 김치를 썰어서 담아 보니 커다란 김치통의 반 이상을 채울 수 있었다. 제법 큰 포기의 배추로 담근 김치인 듯했다. 거기에 국물까지 쭉 따라 넣으니 그렇게 볼품없었던 모양이 조금은 보기 좋게 바뀌어 있었다. 일주일만 기다려 보자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며칠이 지났다. 주말이 지나고 선배가 오기로 하루 전날 다시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김치를 먹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조금은 궁금해졌다. 김치통의 양쪽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리자 번쩍 들어 올려졌다. 처음 넣을 때 그 묵직함이 사라졌다.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거의 반 포기도 안 되는 양만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전혀 예상외의 결과에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아저씨가 주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면서 “김치 잘 먹었어. 정말 김치 맛있더라. 김치가 맛있어서 어제는 정육점으로 달려가 차돌박이를 사서 밥이랑 볶아서 먹었어.” “아저씨가 다 드신 거예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럴걸? 정말 맛있더라고. 신김치로 볶으니까 더 맛있던데. 국물도 듬뿍 넣어서 볶았더니 더 맛있었고.” 평소 치아 상태가 안 좋았던 아저씨에게는 오히려 묵은지가 더 좋았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이런 김치 생기면 나한테 꼭 얘기해야 해.” “네, 그렇게 할게요.”
과연 내 멋대로 행동을 해서 냉장고에 신김치를 넣어 놓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했을 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찔함이 밀려와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얼마 남지 않은 묵은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 나온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다 의미를 갖기 마련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방의 커다란 냉장고에는 여전히 세 가지 반찬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선배가 가져온 김치통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어 남겨진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기로 했다. 네 귀퉁이를 열어 김치통 안을 들여다보자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이 양반이 김치를 교체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김치만 주고 갔구먼!’ 낚시 끝나고 돌아오면 한 소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통을 깨끗이 씻고 김치 교체를 하기 위해 선배가 가져다준 김치통도 열어 보았다. 그런데 뚜껑을 여는 순간 냄새가 확 퍼져 나갔다. 순간 코를 막아야 했다. ‘아이구, 셔!’ 김치를 얼마나 묵혔길래 이런 신맛이 날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겨우내내 먹던 김장김치가 김장독에서 거의 바닥을 보일 때면 보이던 그 모습처럼 배추는 맥아리가 없어 보였다.
‘과연 누가 이것을 먹는다고 가져온 거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길래 묵은지가 된 걸까?’ 계속 혼잣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다 버리고 새로운 김치로 사라고 전화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갔지만 깨끗이 닦아 놓은 김치통에는 김치를 담아야 했기에, 일단은 담아 놓고 선배가 돌아오면 다시 얘기해보자는 생각으로 포기김치를 썰기 시작했다.
물컹물컹한 김치를 썰 때마다 쉰내가 나서 마스크를 해야만 했다. 세 포기의 김치를 썰어서 담아 보니 커다란 김치통의 반 이상을 채울 수 있었다. 제법 큰 포기의 배추로 담근 김치인 듯했다. 거기에 국물까지 쭉 따라 넣으니 그렇게 볼품없었던 모양이 조금은 보기 좋게 바뀌어 있었다. 일주일만 기다려 보자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며칠이 지났다. 주말이 지나고 선배가 오기로 하루 전날 다시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김치를 먹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조금은 궁금해졌다. 김치통의 양쪽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리자 번쩍 들어 올려졌다. 처음 넣을 때 그 묵직함이 사라졌다.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거의 반 포기도 안 되는 양만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전혀 예상외의 결과에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아저씨가 주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면서 “김치 잘 먹었어. 정말 김치 맛있더라. 김치가 맛있어서 어제는 정육점으로 달려가 차돌박이를 사서 밥이랑 볶아서 먹었어.” “아저씨가 다 드신 거예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럴걸? 정말 맛있더라고. 신김치로 볶으니까 더 맛있던데. 국물도 듬뿍 넣어서 볶았더니 더 맛있었고.” 평소 치아 상태가 안 좋았던 아저씨에게는 오히려 묵은지가 더 좋았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이런 김치 생기면 나한테 꼭 얘기해야 해.” “네, 그렇게 할게요.”
과연 내 멋대로 행동을 해서 냉장고에 신김치를 넣어 놓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했을 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찔함이 밀려와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얼마 남지 않은 묵은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 나온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다 의미를 갖기 마련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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