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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23

[에피소드] 일상의 기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친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 했던 터라 어쩔 .. 2017. 4. 19.
[책을 읽으며] 일의 미래를 읽고 1999년 12월 31일,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유명한 예언가의 예언처럼 1999년 멸망으로 2000년을 정말 볼 수 없을까 궁금하면서도 많이 두려웠다. 일찍 잠을 청해서 2000이라는 숫자를 찍는 그 순간을 애써 모면하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창문을 열고 사방을 둘러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른 게 없는 평온한 풍경들, 그리고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있음에 눈물 나도록 기뻐하면서 환호를 했다. 그리고 어느덧 2017년 2000년을 보내고도 17년이나 흘러 봄 향기 가득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있다. 2000이라는 숫자가 주었던 묵직한 중압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1999년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일의.. 2017. 4. 12.
[에피소드] 숨은그림찾기 나에게는 재미있는 취미 하나가 있다. 숨은그림찾기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숨은그림을 찾느라 열중한다. 숨은그림찾기를 언제부터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숨은그림찾기가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다 보면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오로지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 온 정신을 다 쏟을 수 있다는 그 점이 참 좋다. 보통 5개, 많게는 10개의 숨은 그림을 숨겨 놓고 찾게 된다. 숨은 그림을 많이 하다 보면 숨어 있을 만한 자리를 먼저 보게 되고, 그 자리를 집중해서 보다 보면 세밀하게 숨겨져 있는 팽이, 수저, 비행기, 새 등을 찾아내곤 한다. 그 숨겨진 대상을 찾아낼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숨어 있는 그림을 금방 찾아냈습니다 라.. 2017. 3. 29.
[에피소드] 아내와 장보기 우리 부부는 60대로 결혼 37년 차다. 아직도 가끔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편인데, 특히 짜거나 매운 음식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고혈압 초기에다 6~7년 된 허리디스크 때문에 정형외과와 한방병원에 다니다가 디스크 수술을 한 지 2개월째고, 나는 회사를 나오고서 얻은 당뇨가 9년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딸아이 생각에 맛을 중요시하고 나는 건강을 우선시하기에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내는 아파트의 통장 일을 보고 있고, 나는 60세에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일 년 전부터 집 근처에 사무실을 열고 있어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요사이는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여유시간이 많은 편인데, 이게 또한 다행인 것이 아내의 디스크가 심해진 작년부터는 무거운 가공식품.. 2017. 3. 15.
[에피소드] 사진첩 오랜만에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엄마와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게 디지털로 통하는 시대라 사진은 구시대의 유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가끔 꺼내 보면, 오늘을 사는 동력이며 내일을 위해 뛸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곤 한다. 젊은 시절 참으로 고왔던 엄마는 어느새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어 있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카락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온화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온통 처녀 시절은 흑백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사진첩에 남아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나는 사진 찍는 게 많이 어색한 나머지, 어린 시절 사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도 이상해서 “왜 내 어린 시절 사진은 조금 남아 있어요?“라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 2017. 3. 8.
[에피소드] 따로국밥 고향이 댐공사로 수몰되는 바람에 보상문제를 해결하려고 시골에 갔다가 국밥집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었다. 한 식탁에 할머니 혼자 국밥을 드시기에 합석을 하자며 양해를 구하였다. 할머니는 밥 따로 고기국 따로인 따로국밥을 들고 계셨다.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국은 한쪽에 밀어 놓고 밑반찬에 밥만 드셨다. 다른 곳에 밥집이 있는데 왜 국밥집에 와서 밥만 드시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밥을 다 드신 할머니가 등에 진 가방을 내려 그 속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국을 비닐봉지에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아 담았다. 한 겹 더 봉지로 싸더니 가방에 넣고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나가시는 것이다. 궁금증을 풀려고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더니 “요즈음 농촌에.. 2017.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