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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처마의 길이

by 앰코인스토리 - 2020. 8. 27.

 

초등학교 시절, 주말이면 가까운 절로 청소를 하러 가곤 했다.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1년 365일 끊임없이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다 보니 사찰 주위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수 있기에 우리 고장, 우리 유적지는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로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조를 나누고 선생님의 지휘 아래 맡은 구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절에 대한 관심보다는 청소의 목적으로 온 터라 사찰을 꼼꼼하게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무심코 마주친 것이 사찰의 처마였다. 그리고 그 처마 안에 그려진 갖가지 그림들을 보면서 새삼 놀라게 되었다. 언젠가 만화책 속에 나왔던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왜 저런 곳에 저런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꽤 궁금하기도 했었다. 처마의 곡선미와 아름다움을 지켜봤다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려진 처마 밑 단청의 그림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처마며 단청이며 다 잊고 살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EBS <마스터>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꽤 유명한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현준 님의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나보거나 말해본 적은 없었지만 건축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좋아보여서 평소 좋아하던 건축가라 열여섯 회로 짜인 강의를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처마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강의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왜 수많은 한옥들을 보면서 그 점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처마의 길이는 지역에 따라 나라에 따라 위도에 따라 달랐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햇빛과도 관련이 있고 비와도 연관이 되어 있음을 유 건축가는 얘기해 주었다. 그동안 가끔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었을 거라 생각했던 한옥에서 과학적인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던 것도 집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역할도 있었겠지만, 습기에 취약한 나무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라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친구네 집을 가게 되면 그 내부의 웅장함에 감탄만 했지 골격을 이루었던 주춧돌이면 기둥 처마는 한 번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었구나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제대로 된 집을 만들기 위해 한옥을 배운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나무에 못질을 하지 않고 나무의 결을 살리는 것이 한옥만의 과학이라면 오해하는 겁니다.”라고 했던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한옥 곳곳에 과학이 숨어 있었고,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담뿍 담겨 있던 것이다.
시간이 나면 한옥촌을 찾아 들러봐야겠다. 그리고 코로나가 물러나고 나면 지인들과 함께 둘러보면서 한옥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하나하나 얘기해줘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