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남자와 떠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자의 이야기,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마주 보는 순간 더 힘들어질까 봐 자신의 감정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즐거울 수가 없지요. 혼자서는 알을 깨부수고 나가기 힘들지요.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과의 대화는 때로는 필요한 것 같아요. 대화를 하면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 갈망하는 것을 분명히 그려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면에서 캠핑카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벡키(줄리엣 루이스)는 길버트(조니 뎁)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요. 무의식 중에 길버트가 벡키에게 끌리는 이유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그마한 것부터 자신의 욕망을 이뤄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길버트와 벡키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을 듣다 보면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짚게 됩니다.
벡키 :
I'm not into that...that whole external beauty thing.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외모 말이야.
Cause it doesn't last.
오래가지 않는걸.
It's what you do that really matters.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So what do you wanna do?
넌 뭘 하고 싶어?
길버트 :
I don't know. There's not so much to do here, really.
글쎄, 여기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벡키 :
You can think of one thing.
한 가지만 말해봐.
Think of one thing people do here.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걸로 하나만 말해봐.
벡키는 길버트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자꾸 그에게 뭘 하고 싶은가를 물어요. 그는 뭔가를 욕망하지만 억누르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어요.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져 고도비만인 채 살아가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장애우인 동생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길버트뿐이라는 사실이지요.
다음 대화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벡키와 그런 그녀가 마냥 신기한 길버트의 모습이 보여요.
벡키 :
It's changing.
저 노을 좀 봐.
That's what's wild about the sunset.
난 해질녘이 좋아.
It'll just change really, really slowly in front of your eyes.
색이 천천히 변하는 게 다 보이거든.
I love the sky. It's so limitless.
하늘도 너무 좋고 끝없이 넓잖아.
길버트 :
It is big. It's very big.
크지, 아주 커.
벡키 :
Big doesn't even sum it up right.
‘크다’라는 말로는 하늘을 다 표현할 수 없어.
That word "big" is so small.
그런 말로는 부족해.
You'd have to get those really giant words...to describe the sky.
하늘은 그보다 거대한 단어로 표현해야 해.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끼는 길버트는 그녀와 이런 대화가 좋아요.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을 유지해가는 것이겠지요. 벡키는 좋아하는 게 많아요. 해질녘도 좋아하고, 하늘도 좋아하고요. 반면 길버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상태입니다. 다음 대사에서는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잘 드러나 있어요.
길버트 :
I want a new thing.
모든 걸 바꾸고 싶어.
House. I want a new house for the family.
우리 가족이 살 새 집이 있었으면 좋겠고
I want Mama...to take aerobics classes.
우리 엄마가 에어로빅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고…
I want Ellen to grow up.
앨런도 어서 컸으면 좋겠고
I want a new brain for Arnie. I want...
어니가 멀쩡해졌으면 좋겠고 또…
벡키 :
What do you want for you?
자신을 위해서 바라는 건 없어?
Just for you.
너 자신을 위한 것.
길버트 :
I want to be a good person.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접속사 없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는 법
벡키는 몇 번의 대화를 통해 길버트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면 다음 문장에서도 드러나듯이 죄다 가족을 위한 것들을 이야기할 뿐이었기 때문이지요.
I want Mama...to take aerobics classes.
I want Ellen to grow up.
이 문장들은 모두 같은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I)+동사(want)+목적어(Mama)+목적보어(to take~)이지요.
이러한 문장 구조는 한 문장 안에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원래 한 문장 안에는 하나의 주어와 동사만 와야 하지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려면 접속사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영어는 길고 복잡한 문장구조를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주어+동사+목적어+목적보어라는 문장구조를 따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바람은 없냐는 질문에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만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이유를 함축하고 있지요. 벡키는 이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려고 해요. 그녀는 이곳에 길버트가 있기에 계속 머물고 싶지만 그는 계속 있어 달라고 이야기해주질 않아요.
길버트는 그녀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는 그녀에게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아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서로의 결핍을 읽어낸 이후로 길버트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자신의 아픔, 욕망을 그녀에게는 이야기했지요. 그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길버트는 계속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행복하지 않은 채 계속 살아가게 되는 걸까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현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찬찬히 그려주고 있어요. 그럼에도 벡키를 통해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그려내고 있지요.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동시에 가족을 돌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드러내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벡키가 추구하듯 사소한 것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인생의 역전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벡키와 길버트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아픔을 알아봐 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을 일깨워주던 길버트와 벡키의 대화가 다정하고 따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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