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파원] 미국만 사용하는 단위

미국에 오면 가장 많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량형입니다. 길이, 무게, 온도 등은 생활형 물리량인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용하거나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미터법이 아닌 인치법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제 단위인 SI 단위계가 아닌 미국 표준단위계(US standard unit)를 사용하지요. 이 미국 표준단위계는 영국의 야드파운드법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길이는 마일(mile, mi.), 야드(yard, yd.), 피트(feet, ft.), 인치(inch, in.)를 사용하고 무게는 파운드(pound, lb.), 온스(ounce, oz), 온도는 화씨(Fahrenheit, ℉)를 사용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몇 마일(mile) 후 빠져나가야 한다느니 몇 피트(feet) 후에 우회전 하라는 화면이나 음성은 언제 들어도 익숙지 않고 간혹 거리 개념을 헷갈려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아침 뉴스를 보면 기상 캐스터가 오늘은 110℉(43°C)까지 올라가니 더위를 조심하라는 내용이 나오면 어느 정도 더위인지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야구 투수의 구속이 95마일(153km/h)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든지 골프에서 타이거 우즈가 350야드(320m)를 드라이버로 날렸다는 등의 모든 생활 속 단위를 미국 표준단위를 사용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갔을 때 신장과 체중을 신청서에 적어야 하는데 신장을 기존 cm 단위에서 다시 피트(feet)와 인치(inch) 단위로 환산하려면 계산기뿐만 아니라 상위에서 하위 단위의 개념까지 알아야 환산이 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서 한참을 계산한 끝에 적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단위계 - Inch

미국단위계 - Mile

미국단위계 - Oz

그럼 전 세계에서 이런 단위를 사용하는 나라는 몇 군데나 있을까요? 아쉽게도 아시아에 있는 미얀마, 아프리카에 있는 라이베이라라는 나라만 사용하는데 미국을 제외한 두 나라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나라가 아니므로 사실상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는 반도체 업종이기 때문에 미국 기술의 영향을 받아 이런 단위를 자주 접할 수 있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또 다른 불편함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단위계가 표준인 분야도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사실상 표준인 항공, 디스플레이, 컴퓨터 분야 등은 미터법보다 미국 단위계를 전 세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고도 몇천 피트 상공을 날고 있다는 기장의 멘트를 들을 수 있고, TV나 컴퓨터 모니터는 모두 몇 인치로 통용되고 있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전 세계가 함께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 성장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각 나라의 미터법과 미국의 야드파운드법이 공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단위계의 혼선으로 인한 피해는 미국 내에 없을까요? 1999년 9월에 미국에서 화성으로 보내는 탐사선에 이러한 단위계의 혼선으로 인해 3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주선을 설계한 제작한 록히드 마틴사는 화성 궤도를 진입하기 위한 로켓 엔진의 연료량을 파운드/초 단위로 계산해서 보냈는데 이를 받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킬로그램/초 단위라고 생각해 계산한 결과 엔진의 연료에 절반 이하의 추력으로 분사되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NASA에서는 2007년도에 미국 단위계를 퇴출하고 미터법으로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공사를 막론하고 미국 절대다수에서 미국 단위계가 워낙 공고히 쓰이다 보니 미국 전역 인프라에 뿌리내린 미국 단위계의 교체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며 국민들은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미터법이 공식적으로 쓰이는 곳은 루이지애나주가 유일하며, 다른 주에서도 주 의회 차원에서 몇 번 전면적인 도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하고 단지 미국 단위계를 미터법으로 환산할 때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1마일은 1.6km이고 1파운드는 0.45kg이라는 식입니다.

 

미국 국민들이 미터법의 편리함과 정확함을 따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번 호를 마칩니다. (^_^)

 

By 특파원 김경수  | 미국,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즐거운 미국 소식을 전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