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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가을의 끝자락에 사랑이란 한 글자 부여잡고

by 앰코인스토리 - 2016. 11. 15.


가을도 지나고 겨울로 접어드는, 한 해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요즈음에 여러분께 어떤 자기계발서를 소개해 드려야 한 해를 올곧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책, 책상 정리에서부터 심신의 정리를 도와주는 책, 열정을 되살리는 책, 목표에 충실한 마무리를 이끌어내는 책, 이렇게 뒤적거리다 보니 한숨이 포옥 나오더랍니다. 햇살이 이렇게 고운데, 코스모스가 나긋하게 바람을 타고 있는데,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이 아직도 나무 끝에 매달린 가을인데 말이지요.


자기계발서냐, 사랑 타령이냐를 놓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엄청나게 글로벌하면서도,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아직 도전할 가치가 남아있는 진정한 자기계발의 일면이 바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사랑 속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위로받으면서요. 일도 중요하고 자기계발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허전하겠지요. 가을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 타령을 시작해 봅니다. 사랑이 자기계발에는 최고라는 핑계로 말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사랑을 빼놓고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랑도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겠지요. 첫사랑, 끝사랑, 가버린 사랑, 시작하는 사랑, 짝사랑, 외사랑, 미운 정과 고운 정,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썸 중의 썸에서부터, 대하드라마 같은 사랑, 미니시리즈 같은 사랑, 오래 여운이 남는 단막극 같은 사랑, 짧지만 깊이 있는 한 편의 시 같은 사랑. 지금 당신이 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혹은, 지금까지 어떤 사랑을 해보셨나요. 사랑을 노래하는 수많은 유행가 중에 어떤 노래가 귀에 꽂히나요. 사랑을 말하는 수많은 드라마 중에 어떤 사람의 어떤 대사가 마음에 남았나요.


이중간첩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를 다룬 영화들, 스케일 크게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들, 전쟁에 휘말린 대륙의 영화들, 작고 연약한 개인들의 소박한 삶을 다룬 영화들, 멜로에서 스릴러까지, 서부극에서 추리물까지, 수많은 영화 중 어떤 사랑의 장면이 가장 기억나나요. 이 가을, 당신의 마음속 우물을 길어 올리면, 어떤 사랑의 단어들이 담겨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을 책으로 만나볼게요. 어쨌거나, 가을이니까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그 날,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 펭귄클래식코리아


모든 영화가, 모든 드라마가, 모든 책이 사랑을 다루고 있어요. 과연 책 몇 권으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룰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의 ‘첫사랑’부터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많지만 ‘첫’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인생 전체를 통틀어 수많은 사랑이 스쳐 지나가더라도 딱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사랑, 사랑에 대한 첫 경험이니까요. 첫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게 기억되지요. 아련하고 근사한 추억으로 포장된 선물상자 같달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첫사랑의 상자를 풀어본다면 이 소설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참 아름답고 풋풋하고 꽃향기 가득한 봄이었는지 몰라도, 뒤돌아보면 누렇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듯, 약간 씁쓸하고 풋풋하고 비릿한 여운이 남는 달까요.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10대 소년이 서술하는 첫사랑입니다. 이 소설을 10대에 읽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저도 꽤 늦은 나이에 읽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나이가 든 후에 읽는 「첫사랑」은 통속적이고 결말이 뻔히 보이지만, 소설 속 첫사랑의 묘사는 날것 그대로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워요. 소년은 지독한 첫사랑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남자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실천문학사


그토록 오래된 그리스로마신화도 한낱 ‘사랑 따위’에서 시작합니다. 기원전부터 읊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 속의 사랑과 질투는, 세계 명작이라 일컫는 수많은 소설로 가지를 뻗어 나가지요. 감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소설의 근간은 사랑이라고 말이지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책들도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작은 개인들의 사랑을 그려냅니다.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들이 역사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들이 흥미롭지요. 우리나라 드라마들도 그랬잖아요. 요즘은 판타지 드라마가 인기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였던 「모래시계」라던가, 「여명의 눈동자」같은 드라마를 떠올려 보세요. 주인공들의 사랑은 개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 속에서 방황합니다. 굳이 대하드라마나 대하소설처럼 장대한 시간에 걸쳐 설득하지 않더라도, 짧은 시 한 편에 이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녹여낸 시인이 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시집 중에서도 굳이, 신경림 시인의 이 시집을 권합니다. 꽃 한 송이 속에서 시장통의 악다구니를 떠올리고, 바다를 굽어보면서 사랑싸움을 하는 부부의 소리를 듣습니다. 사랑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사랑보다 우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지금의 청춘들에게 가벼운 위로보다는 묵직한 울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사랑이 더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여행이 충분했던 날은 없었다.

여행은 언제나 부족했고, 사랑은 언제나 목말랐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최갑수, 예담출판사


끝없이 여행하는 사람은 끝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닐까요.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면서,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 삶이 여행이라면, 삶을 모두 여행으로 치환하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랑, 이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술잔을 달그락거리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까닭 모르게 울컥할 때마다 여행을 떠났고, 떠나지 못할 때는 다녀온 여행을 회상하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유독 반복해 들었던 음악과, 밑줄이 진해진 문장 중에서 사랑과 여행에 관한 문장을 가려 뽑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온순해지는 풍성한 문장과 따끈한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요. 이 책을 읽으면 여행하고 싶어지고,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하며 읽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가을바람에 마음이 서걱거리는 날, 이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동네 카페에 나가 앉으면, 사랑하는 기분, 여행하는 기분에 잠시 행복할 것 같습니다.




“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내일도 사랑을 할 딸에게」

유인경, 위즈덤경향


풍부한 인생살이의 경험이 녹아든 어른의 조언이 싫지 않습니다. 지은이가 엄마이기에 가능한 친근감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종종 얼굴을 내밀었던 저자는 옆집 아주머니처럼 친숙한 느낌입니다. 글을 읽으면 목소리가 쟁쟁 울리는 것도 같고요.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남자들을 만난 사람이라고 운을 뗍니다. 네 명의 친오빠, 친척들, 대학 동창생들을 비롯해, 30여 년이 넘는 기자 생활, 방송과 강의활동을 하며 장르별 남성들을 거의 다 만나보았다고 말이지요. 젠틀함의 극치로 보였던 명사가 알고 보니 폭력 남편이라거나, 지성의 표상인 사람이 술만 취하면 육두문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거나, 소심해 보이는 남자였는데 뜻밖에 책임감이 강하고, 겉으론 지극한 아내 사랑을 과시하는 남잔데 바람둥이이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자가 애인에게 장기 기증까지 해준 사례 등을 엄청나게 경험한 저자는, 그래서 설득력 있게 조언합니다. “완벽한 남자는 없지만 절대 안 되는 ‘놈’은 있다. 그런 남자를 알아보는 혜안이 중요하다.”라고 말이지요. 워낙 많은 책을 써온 연륜 있는 저자여서, 자신 있게 권합니다. 연애든, 사랑이든, 결혼이든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책입니다.




글쓴이 배나영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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