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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해외 이모저모

[미국 특파원] 한인 테니스 동호회

by 앰코인스토리.. 2026. 4. 29.

애리조나주(Arizona State)는 한국 사람들이 타 주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는 직항 편도 없고, 재외국민 투표를 하려면 출장 투표소를 두고 인근 네바다주(Nevada State)의 라스베가스(Las Vegas)와 치열한 경쟁으로 애리조나주에 설치가 되기도 하지요.

 

이곳에는 한인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체육 동호회가 많이 있습니다. 축구, 등산, 테니스, 골프 등 각자의 취미에 맞게 한인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의 향수를 그리워하면서도, 현재 미국 삶에 대한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좋은 매개체가 됩니다. 특히, 체육 동호회는 건강을 목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작은 소모임이기 때문에 그 정이 더 돈독한 것 같습니다. 한인들만의 감정으로, 문화로, 그리고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에 더 그렇겠지요. 타는 듯한 여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빈 코트만 있다면 낮이고 밤이고 모여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가벼운 맥주 한잔의 목축임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해방구가 되는 셈입니다.

 

피닉스(Phoenix) 남부에는 활발히 활동하는 테니스 동호회가 두 개 있습니다. 다른 모임도 있기는 하지만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은 러브포티(40-0)와 테술러(Tesuler)입니다. 이중 필자가 속한 테술러는 ‘테니스와 술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운동 후 가벼운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랍니다.

 

한인사회가 좁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그런 두 모임이 최근에 모여 교류전을 하고 2차 뒤풀이로 테니스에 대한 열정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뒤풀이에서는 스포츠 바에 모여 서로에 대한 어색한 소개 시간을 보내고, 오늘 경기에 대한 평가와 자기 동호회 자랑이 이어지는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역시 같은 취미로 만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금방 몇 년을 만난 것 같은 친근감이 들더군요.

 

그 중 윤 선배님이라는 분과 테니스를 왜 치는지에 대한 나름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선배님은 은퇴하시고 지역 한인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연배가 지긋하신 분으로, 테니스에 대한 사랑과 실력이 남다른 분입니다. 러브포티(Love 40)와 테니스와 술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동호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존재와 그날 우리 모두는 테니스를 사랑했던 존재로 사랑이 테니스를 치는 이유라고 며칠 후 지역 신문에 실린 글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역시 연륜에서 나오는 철학적인 심오함을 보여주시는 선배님이셨습니다.

 

여기서 테니스에서만 볼 수 있는 점수인 15-0, 30-0, 40-0 등의 유래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종목은 모두 숫자 1부터 점수를 표현하는데 유독 테니스만 이상한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시계에서 왔다고 합니다. 800년 전, 프랑스의 수도원에서 당시에는 점수판이 없었기 때문에 시계를 보고, 한 점은 15, 두 점은 30, 세 점은 45, 그리고 한 바퀴를 돌면 60으로 게임이 끝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45가 아니라 40인 이유는 듀스(Deuce) 때문입니다. 동점 상황에서는 2점을 연속으로 따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40으로 놓고 한 점을 따면 50으로 어드밴티지, 그리고 한점 더 따면 60으로 경기를 종료할 수 있는 점수 체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이론이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론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0점 또한 테니스에서만 러브(Lover)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영어 표현 포 러브(For Love)에서 왔다는데요, 이는 돈을 걸지 않고 순수하게 경기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0점인 사람은 돈을 따지 못하니 사랑으로 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좀 재미있는 유래이지요?

 

외국에서 한인들만으로 이루어진 동호회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우려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사람들과의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는 선배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번 호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