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아하게 연주하라는 뜻의 Grazioso(그라지오소)는 상당히 연주하기 까다로운 지시어입니다. 딱 지적해서 저것이 Grazioso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야 하는 감정이므로 악기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단어 자체로 풀이하면, ‘우아(優雅)하게’라는 뜻은 ‘기품 있고 아름답다’라고 정의됩니다. 한자로 보면, ‘다른 것에 비해 뛰어나고(優, 뛰어날우), 맑다(雅, 맑을아)’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연주를 할 때 맑다는 것을, 뛰어나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드뷔시의 피아노곡 Arabesque(아라베스크) 1번을 들어보면 우아한 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단번에 이해됩니다. 피아노의 선율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우아함이란 튀지도 않고 모나지도 않게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연주가 쉼 없이 계속 이어져야 우아한 선율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까다롭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소리는 감동을 더해줍니다.
드뷔시 아라베스크 모음곡
Claude Debussy "Arabesque No.1"
영상출처 : https://youtu.be/Oa0lXuSt_CQ?list=RDOa0lXuSt_CQ

늦가을 어스름한 아침에 안개가 산을 조용히 넘어오는 모습은 인생의 많은 고비를 지나 이제는 쉬고 싶다는 의지가 다 털어낸 빈 마음 속에 자리 잡게 합니다. 우아함이란 고달픈 삶의 끝자락에 내려앉은 노인의 흰 머리카락이라 말해도 거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젊음에도 있지만 산전수전 겪어 농익은 노년에 더 많이 있을 겁니다. 젊은 시절에는 채우려고 노력하고 노년으로 갈수록 버리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 아닐까요?
마스카니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
Mascagni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영상출처 : https://youtu.be/BIQ2D6AIys8

클래식 음악에서 우아함을 이야기하자면 발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남녀 발레리나가 추는 Pas de Deux(파드되)는 음악의 Grazioso를 몸 동작으로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추는 춤’이라는 뜻의 Pas de Deux는 아름답고 뛰어난 표현력으로 청각과 시각을 우아함의 세계로 동시에 이끌어 줍니다. 고전음악이 성행할 당시에는 연주와 무용을 같이 공연하는 발레가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이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그 당시에도 지금에도 청중을 신비로움과 우아함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차이코프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Tchaikovsky Nutcracker Grand Pas de Deux - Adagio'
영상출처 : https://youtu.be/Q3YexF616UI

단풍의 붉음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서리가 내린 모습은 좀더 붉어지고 싶은 단풍의 열정을 잠 재우는 듯합니다. 드디어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아채라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더 깊어지기 전에 혹시나 혹독할 것 같은 겨울을 준비하라는 신호겠지요. 가을의 풍요로움에 취해 나른해지고 따스함을 찾는 게으름을 콧속 찡한 차가움과 폐부를 파고드는 얼어붙은 새벽 공기로 겨울의 오고 있음을 하얗게 시리도록 알려줍니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에서 백조를 감상해 보면, 겨울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위의 우아한 백조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Grazioso와 같이 천천히 슬며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귓가에 속삭여주는 듯합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Saint-Saëns, The Swan (Le Cygne) from Le carnaval des animaux
영상출처 : https://youtu.be/WDFlKOqd5nw?list=RDWDFlKOqd5nw
11월은 인생의 잡학(雜學)을 낙엽에 묻혀 떨어버리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다 떨어낸 아쉬움을 갈색 커피 한 잔에 녹여 마시면서 긴 호흡으로 따스한 온기로 채워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시간입니다. Grazioso의 진정한 매력은 끊어질 것 같지만, 끊기지 않고 유려(流麗)하게 이어 나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고유 물질에서 찾기보다는 인간미에서 더 어울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여럿이 하는 운동 경기를 과하게 좋아하여 특정 운동 구단을 응원하다가 우연치 않게 접한 알고리즘에 이끌리어 Grazioso에 걸맞은 생소한 아리랑을 만나는 기회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나온 계절 중 제일 짧을 것 같을 가을에게 아쉬움을 잔뜩 챙겨 짊어지게 하고 아리랑 고개로 우아하게 넘겨 버리라는 계시가 아닐까 합니다. 늦가을 낙엽을 얼려버린 서리가 전해주는 추운 알람을 꺼버리고 묵직하게 다가올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일어나야겠습니다.
“아리랑” 프랑스 앙상블 아마릴리스 와 파트리샤 프티봉
영상출처 : https://youtu.be/5TVd6nblQfE?list=RD5TVd6nblQfE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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