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으로 발견한
미지의 세계
예로부터 미지의 세계는 인류에게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인류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의 이야기는 그간 영화에서도 단골 주제였지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이런 도전과 욕망은 고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늘 너머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고자 망원경이라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는 하늘을 탐구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굴절 망원경으로부터 지금의 허블 망원경까지 이르며, 그저 그 꿈같던 미지의 세상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고 있지요.
그런데 미지의 세계가 그렇게 아득히 먼 곳에만 있을까요?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미세해, 그간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세계도 있습니다. 이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현미경이지요. 현미경은 약 1600년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현미경을 통해 곤충과 식물 등을 관찰하였는데, 이를 삽화로 담아 최초로 책을 낸 인물도 있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이지요.
그가 펴낸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1665)에 수록된 삽화를 몇 가지 살펴볼까요? 위의 그림은 벼룩과 개미의 눈 삽화입니다. 당시는 사진이나 이미징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미경을 통해 확인한 정보를 최대한 그림으로 자세히 담아내야 했습니다. 로버트 훅은 식물의 세포벽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세계 최초로 Cell(세포, 수도사들이 수행을 위해 머무르는 작은 방들을 연상했다고 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동 시대의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라는 네덜란드 현미경 과학자는 처음으로 세균(박테리아)를 발견함으로써 그때까지 전염병이나 질병을 신의 노여움이나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기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현미경은 대체 어떤 원리로 그 작디작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걸까요? 현미경은 일반적으로 광학 현미경을 의미합니다. 가시광선을 이용해 물체를 확대 관찰하는 것으로 잘 가공된 대물렌즈와 접안렌즈를 통해 1차, 2차로 확대된 상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종류와 원리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크기가 달라지지요.
광학 현미경의 분해능은 대략 200nm(200X10-9m) 정도로, 이는 빛의 회절 현상으로 성능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분해능이란 서로 인접한 두 점을 서로 다른 점으로 구별할 수 있는 능력, 즉 얼마나 작은 물체를 자세하게 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시광선 파장의 절반 정도인 200~350nm로 제한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200nm 이하 영역의 단백질이나 원자 등 미시 영역에서 우리가 보았던 이미지들은 어떻게 관찰된 것일까요? 바로 전자·원자 현미경 개발 덕분입니다. 전자·원자 현미경은 1930년대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주사전자현미경)’과 ‘TEM(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투과전자현미경)’이 개발되었고, 1981년에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주사터널링현미경)’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SEM과 TEM, 그리고 STM의 등장으로 물리적 현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모든 연구 분야를 막론해 ‘관찰’이라는 분야의 새 지평이 열렸습니다. 1986년, 최초의 전자현미경(특히 TEM)의 개발을 포함한 전자광학에서의 업적으로 에른스트 루스카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STM을 개발한 공로로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이번 <세상을 바꾸는 발견들, 9편>에서는 표면 이미징에 강점이 있는 SEM과 원자 조작까지 가능한 STM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학 현미경의 분해능은 빛을 활용하기 때문에 빛의 파장보다 더 작은 물질을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SEM은 어떤 방식을 활용하기에 더 작은 크기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전자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SEM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canning Electron, 즉 전자를 사용하여 스캔한 이미지를 우리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SEM의 원리는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전자총에서 전자를 쏴 전자가 나오면 이는 가속하는 마그네틱 집광렌즈를 통과하고, 그 이후 대상 시료에 전자가 충돌하는데, 그 결과로 튀어나오는 전자를 검출기가 분석합니다.
이때 이차 전자를 검출하여 이것을 이미지로 나타내면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시료 표면의 지형적 정보가 담긴 SEM 이미지가 되는 것이지요. 이차 전자 말고도 후방산란(Back Scattering) 전자나 X-선을 통해 시료의 조성을 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도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파동적 성질을 가지므로 회절 현상이 존재합니다. 물론, 전자의 드브로이 파장(de Broglie wave)은 광학 현미경에서 사용하는 가시광선보다 훨씬 짧지만, 여전히 같은 이유로 제한을 받습니다. 이론적인 한계보다도 실제 기술적 한계로 도달 가능한 최소 해상도가 1nm를 넘어가기 쉽지 않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기존에 보아왔던 물질 표면의 원자 이미지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더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지요?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에서 터널링(Tunneling) 효과를 활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터널링 효과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갖는 에너지보다 높은 에너지 장벽을 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고전 역학의 지배를 받는 거시 세계와 달리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미시 세계에서는 자신이 갖는 에너지보다 높은 에너지의 장벽을 통과하는 일이 존재하지요. 바로 이런 현상을 ‘터널링 효과’라고 합니다. 현재 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많은 장애물이 나타나는데, 터널링 효과도 주된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경로로 흐르게 되면서 누설 전류가 발생하고 전력 소모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성능을 저하하게 되지요.
STM에서는 이 원리를 이용하여 SEM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데요, 알고자 하는 영역 대상 표면 위에 전도 팁이 위치하고 물질과 팁에 바이어스(전압 차이)를 걸어주면 전자가 전도 팁과 측정대상 표면 사이의 진공 속을 통과합니다. 이때의 터널링 전류는 팁과 측정 대상과의 상대적 위치 등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표면의 상태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STM은 어떤 영역까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STM은 0.01 nm (0.01 x 10-9) 깊이 분해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원자 수준에서 물질 표면을 영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STM은 물질 표면의 원자 구조를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팁을 활용하여 단일 원자를 이동시키거나 회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STM은 발전하여 AFM(Atomic force microscope)으로 한 단계 더 올라셨는데요, 기존의 측정은 도체와 반도체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전류가 흘러야 하기 때문이지요. 현재 가장 대표적인 원자 현미경 기술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STM에서 탐침은 전류를 감지한 반면, AFM에서 캔틸리버라는 막대 끝의 탐침은 표면 위를 훑고 가며 원자 간의 상호작용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때 작용하는 원자 간의 상호작용은 반데르발스 힘, 정전기력, 화학적 결합력 등을 통해 표면의 상태를 영상으로 기록하게 됩니다.
작은 벌레나 곤충의 관찰로 시작해 이제 물질 표면의 원자적 결함까지 발견해내는 기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미경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영원히 몰랐을 우리 곁의 또 다른 세상,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엄연히 공존하던 이 또 다른 세상의 발견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인류의 삶을 확장하는 놀라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현미경을 통해 또 어떤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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