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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세상을 바꾸는 발견들] 귀족 기체, 아르곤

by 앰코인스토리.. 2025. 5. 13.

과학자의 집념,
비밀의 원소 ‘아르곤’을 깨우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기 속 구성 기체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의구심을 품은 두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실험에도 반응하지 않고 공기 속에 조용히 섞여 있어 이름조차 없던 기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던 기체가 있었으니, 이 기체는 바로 아르곤(Ar)입니다. 대기 중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큰 비중(약 0.93%)을 차지하는 아르곤의 발견은 주기율표의 완성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과학 연구 시대를 열었습니다.

 

189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Rayleigh, 1908-1919)는 기이한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공기에서 추출한 질소와 화학적으로 합성한 질소의 밀도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지요. 모든 실험을 다시 점검해보았지만, 실험상의 오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레일리는 이 문제를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램지(William Ramsay, 1852-1916)에게 공유했고, 두 과학자는 본격적인 공동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이들은 공기 속 산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 알려진 모든 성분을 제거한 뒤에도 여전히 남는 ‘무언가’를 발견했고, 이것은 무색무취하며 화학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정체불명의 어떤 기체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체를 전기 방전을 통해 분광분석(스펙트럼)한 결과, 알려지지 않은 선들이 포함돼 있어 이는 새로운 원소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사진출처 : 위키백과

이 신비한 기체에는 ‘게으르다’는 뜻의 그리스어 Argos에서 따온 ‘아르곤(Argo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발견은 당시 과학자들에게 믿을 수 없는 충격적 사실로 결국 주기율표에 새로운 족이 추가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혹시 우리가 숨 쉬는 지금의 공기 속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르곤은 주기율표 18족에 속하며 원자번호는 18, 전자배치는 [Ne]3s²3p⁶로, 이미 전자껍질이 완전하게 채워져 있어 다른 원소들과 화학 결합을 잘 하지 않아 ‘게으르다’는 이름은 꽤 절묘하지만 ‘게으르다’고 해서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르곤은 반응하지 않는 성질 덕분에 산화나 부식으로부터 금속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입니다. 예를 들어, 용접할 때 아르곤 가스를 쓰면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해 깔끔한 접합이 가능합니다. 또한, 반도체 제조, 필라멘트 전구, 와인병의 산화 방지 등 고순도 환경이 필요한 모든 곳에 아르곤이 쓰입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아르곤은 공기 중에서 질소 다음으로 많은 기체(약 0.93%)였지만, 발견되기까지 그토록 오래 걸렸던 이유는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지요. 아르곤은 반응도 냄새도 색도 없어 사람들의 눈과 코, 실험실의 장비들조차 눈치채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홀로 완전하여 고요한 상태, 이 점에서 아르곤은 ‘귀족 기체((Noble Gases)’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귀족 기체는 아르곤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헬륨, 네온, 크립톤, 제논, 라돈 등도 불활성기체로 잇따라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반응성이 낮고 무색무취하며 극저온에서도 액화되는 특성이 있어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헬륨은 MRI 장비의 냉각재로 사용되며, 크립톤은 고급 조명과 위조 방지 기술에, 제논은 우주선의 이온 추진 장치에 쓰입니다. 네온은 가장 잘 알려진 활용 예로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가장 대중적이지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그런데 최근 귀족 기체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불활성기체로서의 이들 특징과 달리 고압·고온 혹은 특수 조건 하에서 아르곤, 크립톤, 제논 등은 특정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는 기체는 네온뿐입니다. 정말 ‘완전한 귀족’은 네온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아르곤과 귀족 기체들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질까요? 기체 상태로 반응성이 낮은 아르곤은 생명체에 해가 없고 안정적이며 고체 상태에서도 특이한 물리적 특성을 보여 우주 산업, 양자컴퓨팅, 고체 물리 연구 등의 미래 산업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실험실 중심의 화학을 넘어서, 고에너지 물리학, 초고압 재료 과학, 원자 수준에서의 반응 설계 등 새로운 기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존재하지만 느낄 수 없던 아르곤의 발견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공기조차 다시 들여다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발견은 단순한 발견 그 자체를 넘어서, 과학적 의심과 탐구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레일리는 실험 중 발견한 작은 불일치에 주목하며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으니까요, 만약, 레일리와 램지가 실험을 대충 넘겼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아르곤은 지금까지도 ‘공기 중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르곤의 발견은 1904년 존 레일리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윌리엄 램지에게 노벨화학상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과학의 진보는 그렇게 사소한 차이에 의문을 품고, 끝까지 답을 찾으려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과학은 결국, 침묵 속에서 답을 찾는 여정이지요. 아르곤이 보여준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또 어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마주하게 될까요?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까요? 이번 기사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원장 J. E. 세더브롬의 노벨상 수상 추천문 중 일부를 소개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흥미롭고 중요한 이 모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만, 저는 감히 다음의 사실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원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도 물론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이 경우는 물리 탐구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수준의 정밀도와 정교함을 갖춘 순수 물리 연구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또한 아르곤의 발견이 곧이어 윌리엄 램지 경이 발견한 헬륨과 또한 ‘불활성 기체’ 발견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레일리 경의 연구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하기에 충분합니다. 더욱이 이 성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물리학을 풍성하게 만든 그의 뛰어난 연구들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그는 이 탁월한 연구들로 물리학의 역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원장 J. E. 세더브롬

 

사진출처 : www.priyamstudycentre.com/2020/12/arg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