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이제 ‘물’처럼 써볼까?
수소에너지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올해 서울 시내 폭염 응급질환의심 환자가 15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10가구당 1가구만 에어컨을 사용할 정도로 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않는 유럽에서도 작년과 비교하여 올해 에어컨과 선풍기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는데요, 폭염뿐 아니라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많은 도시와 농촌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전 세계가 이상기후로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매년 극심해지는 기록적인 호우와 폭염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산업화에 따른 다량의 온실가스가 대기에 배출됨에 따라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하여 지구의 표면 온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특히 우리가 삶 속에서 무심코 생산해내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그 주범입니다.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짧은 파장의 태양 복사 에너지는 지구에서 다시 긴 파장의 복사에너지로 나가는데, 이때 이산화탄소 등으로 이루어진 온실가스가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긴 파장의 복사에너지를 흡수하므로 지구 대기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기온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 등 뉴스로만 보았던 먼 나라의 이야기가 이제는 피부로 직접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일이지요. 탄소 중립이란 인간사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요, 이산화탄소는 우리의 생활 대부분에서 발생하지만, 탄소 배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에너지 분야입니다. 화석에너지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나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경우 모두에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습니다. 바로 ‘수소에너지’이지요.
혹시 영화 <마션>을 보신 적 있나요? 화성에서 남겨진 물자를 활용하여 생존해 나가는 매우 흥미로운 SF 영화인데요. ‘화성에서 감자 재배하기’로 유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때 영화의 주인공은 감자를 재배하기 위해 물을 생산해내는데요, 하이드라진 연료와 이리듐 촉매를 활용하여 수소를 생산해내고 이 수소를 산소와 반응시켜 물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하여 물을 만들어낼 때 그 반응에서 전기에너지와 열이 발생합니다. 이 반응에는 소량의 물과 질소 산화물을 제외한 다른 물질이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화석에너지의 완벽한 대체로 기대되는 신재생에너지이지요. 이 부분은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수소는 생산 방식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양에 따라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로 나뉩니다.
현재 생산되는 대부분의 수소는 ‘그레이수소’에 해당됩니다. 천연가스를 고온 고압의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를 얻어내는 방식이지요. 1대 10의 비율로 수소와 이산화탄소가 발생, 즉 1㎏의 수소가 생산될 때 10㎏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수소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분명 아쉬움이 있는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사용을 줄여야 할 에너지임에도 저렴한 비용으로 인해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럼 ‘블루수소’는 어떨까요? 생산 과정은 그레이 수소와 동일하지만,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CCS 기술로 포집하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CCS 기술이란 포집한 CO2를 지하 깊은 곳에 저장하는 기술을 말하는데요, 이렇게 깊은 곳에 저장된 CO2는 시간이 지나면 용해되거나 광물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레이수소보다는 친환경적이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CO2 포집이 불가능하기에 완전한 친환경 수소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마지막은 ‘그린수소’를 볼까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완벽한 친환경적 수소에너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얻는 것인데, 여기에 사용되는 전기는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해 사용합니다. 풍력에너지나 해양에너지 등에서 생산된 전기를 활용하여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그린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는 기술, 즉 수전해 기술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여러 가지 기술적 한계로 생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직 그레이수소에 비해 상용화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세계 여러 정부와 기업은 그린수소의 단가를 낮추는 기술 개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상황이지요.
올해 7월 한국전자기술원(KETI)이 수전해 기술에 필수적인 고가의 금속 촉매 사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단원자 촉매기술을 개발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린수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전해 기술에 사용되는 촉매 소재의 높은 가격과 수급 부족의 문제였는데 반가운 소식이었지요. 기존 촉매가 금속 함유량이 40~70%에 달하는 것이라면 연구진이 개발한 촉매는 1%의 금속만으로 동일한 성능을 가진다고 합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연구진은 극소량의 니켈에 특정 유기물을 중합하고 일련의 화학 공정을 거쳐 고효율의 단원자 촉매를 합성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고가의 금속 사용량을 크게 줄이고 가격 경쟁력 있는 수전해 촉매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제 진정한 의미의 그린수소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는 다시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와 열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활용되는데요, 연료전지는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해내는 과정의 역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료극에서는 수소를 수소 이온과 전자로 분해합니다. 전해질의 고분자막은 수소 이온만을 통과시키고 남은 전자는 막의 음극에 남아있게 됩니다. 통과한 수소 이온은 산소를 만나 물이 되는데요, 이때 발생한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위차로 분리된 전자가 흐르며 전류가 발생하게 되어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 과정에서도 우리 대한민국 연구진이 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조은애 신소재공학과 교수팀과 포스텍 한정우 화학공학과 교수팀이 비귀금속 촉매를 개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연료전지에서 전기화학 반응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가의 백금촉매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번 연구로 개발된 촉매는 백금 소재 대비 1000배 이상 저렴한 소재라고 합니다. 이번 연구가 잘 마무리된다면 그린수소의 대중화는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굳이 풍력, 태양, 해양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물을 전기분해하는 데 활용하여 수소를 생산하고 이것으로 다시 전기를 생산하지?’ 자칫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전기에너지는 저장이 용이하지 못한 반면 수소는 에너지 저장수단으로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소는 기체, 액체 등 다양한 형태로 저장할 수 있으며, 특히 대용량으로 저장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장시간 보관해도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어 장거리 운송에도 최적화되어있는 것이지요. 또한,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지고 있어 작은 부피에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수소의 질량당 에너지 밀도는 휘발유의 4배, 천연가스의 세 배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같은 양의 다른 화석에너지 대비 서너 배의 에너지 효율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21세기 말이 되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3.7℃, 해수면은 63㎝가 증가하여 전 세계 주거 가능 면적의 5%가 침수될 것이라고 합니다. 생산 과정에서 공해 물질이 생성되지 않고 에너지 효율 또한 다른 화석에너지보다 뛰어난 수소에너지의 개발이 시급한 이유이지요. 경제성의 문제로 등한시되었던 그린수소에 대한 연구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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