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심의 시대에
‘타인’의 입장에 서기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 아룬 간디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대부분 듣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어도 ‘말’은 되지만, 내 앞의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말은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는 ‘말’이 아닌 ‘대화’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대화는 무척이나 걱정스럽습니다. 일상의 언어가 무척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가 낳는 폭력을 매일 마주합니다. 갑질 문화, 성차별적 언행, 가정폭력, 학교폭력 같은 사회적인 갈등의 원인이 알게 모르게 언어적인 폭력에서 시작합니다. 사람에게 물컵을 집어 던지는 물리적인 행위만이 폭력이 아닙니다. 물컵 앞에서 사람을 꿇어앉히는 말이 이미 폭력입니다. 폭력이 언어에서 비롯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각이 언어를 낳고 언어가 감정을 낳기 때문입니다.
‘비폭력 대화’의 창시자이자 심리학자인 마셜 로젠버그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는 우리가 폭력이라고 느끼는 것들에 ‘언어’와 ‘소통’의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밝힙니다. 그는 우리가 잘못 배워온 언어 습관 때문에 대화로부터 상처받거나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돕습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연민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계들이 변화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하지요.
홍성수 법학과 교수는 대화에 이르지 못하는 일방적인 혐오 표현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혐오 표현은 그 자체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 있는 곳에서 발화합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혐오 표현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이미 유통되는 혐오 표현은 차별과 혐오를 당연시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혐오범죄를 낳습니다. 그는 강남역 사건을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 현실에서 발생한 비극적 결과로 봅니다. 혐오 표현은 혐오의 대상에 선을 그음으로써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단절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가 미워집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오가는 대화가 부드러워지겠지요. 은유 작가는 우리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때 내가 가진 편견이 깨지고 자신의 삶이 확장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연결하는 대화를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서로가 연결되면서 세상이 조금 좋은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험이지요.
대화는 타인을 경유하여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르게 되는 통로입니다. 이달의 책을 통해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해볼까요. 나의 말이 누그러지면, 서로의 대화가 보드라워지면, 내가, 서로가, 사회가, 세상이 한결 살만해지리라 꿈꾸면서요.
「다가오는 말들」
은유 지음, 어크로스
세상으로부터 다가온 이야기들이 은유 작가의 꼼꼼하고 오밀조밀한 체에 걸러져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어요. 은유 작가의 체는 거칠고 상처 주는 말들을 걸러내어 이해의 말들, 공감의 말들을 담아냅니다. 그 말들은 “아름답거나 아릿하거나, 날카롭거나 뭉근한” 말들이지요.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그 여자가 얼마나 예쁜지 가을 고등어처럼 반짝반짝해야.” 같은 싱그러운 은유의 말이기도 하고, “글쓰기를 하면 고통이 사라져요?”라고 묻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아픈 말이기도 합니다.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말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말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에서 마음을 위로받습니다. 공감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합니다.
「상처 주지 않는 대화」
마셜 B 로젠버그, 가브리엘레 자일스 지음, 강영옥 옮김, 파우제
로젠버그 박사님의 「비폭력 대화」라는 책에서는 비폭력 대화가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실제 대화의 예시가 포함되어 있어서 워크북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이 책 「상처 주지 않는 대화」는 조금 더 에세이에 가까워서 이 책으로 골라보았어요. 마음을 구체적으로 묻고 표현하는 법이라던가, 다정한 관계에 필요한 말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에 대한 글들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비폭력 대화는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본연의 공감 능력을 키우고, 잘못된 언어 습관을 돌아본다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계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머리를 띵 맞은 듯했습니다.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외면하고 싶었던, 굳이 내 일이 아니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혐오 표현’의 문제들이 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우리는 대충 알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혐오에 대한 문제, 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말이 칼이 되는’ 사례들을 법학자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풀어냅니다. 우리가 ‘혐오 표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남의 일로 여긴다면 그만큼 우리는 차별과 편견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무심하게 던진 나의 말 한마디가 결국 언젠가 나를 찌르는 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혐오 표현이 왜 칼이 되고, 폭력이 되고, 영혼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보아요.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허은실 지음, 위즈덤하우스
시인의 세계는 조금 다른가 봅니다. 허은실 시인은 단어의 고유한 목소리를, 말들끼리의 울림을 듣습니다. 말이 겪어온 시간, 말과 살아온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사랑은 언어를 발명한다고 말하는 시인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은 1부의 첫 단어로 ‘스침’을 골랐습니다. 스친다는 건 두 세계의 가장자리가, 중심에서 가장 먼 곳이 서로 닿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이 책이 당신에게 스쳤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표현이 혐오 표현인지 아는 것만큼 어떤 단어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지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이 얼마나 찬란한 색을 품고 있는지,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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