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史(사)에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뜻과 역사책이라는 뜻,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어원으로 미루어 보면, 역사란 과거의 일정한 시간 속에서 활동한 인간의 모습을 역사가가 기록한 결과물, 혹은 책이라는 뜻이겠지요. 역사를 그리스어로는 Historiai라고 부릅니다. 이는 히스토리아(historia)의 복수형이고, 그 뜻은 '탐구' 입니다. 사료로 확인이 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과거의 근본적인 진실을 찾는 탐구의 과정, 그것이 역사라는 뜻입니다.
기자조선은 대체 어느 나라?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우리가 고조선을 말할 때는 청동기 시대에 등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단군조선(檀君朝鮮), 철기 문화가 시작된 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기자조선이라니, 기자는 누구일까요?
기자는 중국인입니다. 중국의 기록에는 단군의 뒤를 이어 조선을 다스린 기자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선에 예의범절과 중국의 문화를 전해준 사람이라고 하지요. 사료를 찾아보면 우리 역사에 기자가 등장한 시기는 조선 시대입니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이 중국의 인의예지를 숭상하며 중국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율곡 이이의 「기자실기」,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도 기자조선이 우리 민족사의 정통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기자조선을 배우지 않는 걸까요? 기자조선은 중국의 문헌에 의존한 허구적인 기록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기자조선의 유물로 추측되는 것들을 발굴하고 분석해보아도 중국의 고대문화와의 연관성은 있으나 고조선과의 연관성은 밝힐 수 없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기자조선이라는 허구의 역사가 고려와 조선 시대 내내 우리의 정통 역사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과 허구를 제대로 밝혀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역사는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역사서는 무조건 사실만을 기록해야 하는 걸까요?
실제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
삼국 시대를 서술한 두 종류의 역사서가 있습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입니다. 「삼국사기」는 막강한 문벌귀족이 왕의 명을 받아 공식적으로 만든 역사책이고, 「삼국유사」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스님이 쓴 역사책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단군에서부터 시작하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부터 시작합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안시성 전투를 서술합니다. 그런데 고구려군을 이끌고 당 태종을 무찌른 안시성주 양만춘에 대한 내용이 쏙 빠져있습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김부식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양만춘에 대한 사실을 남기지 않았다며 애석해합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의 역사부터 기록합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의도합니다. 일연은 고려가 몽골에 의해 국난을 겪은 후 국가적인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삼국유사」를 집필했습니다. 우리는 몽골의 간섭을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역사가 중국과 대등하다는 역사관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그는 「삼국유사」의 맨 처음에 신화가 아닌 사료로서 단군의 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일연이라는 역사가는 당대 고려의 현실에서 느낀 자신의 주관에 옛 기록이라는 사료의 의미를 더해 하나의 역사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고, 두 역사책이 모두 사실을 기록했다면, 두 책의 가치는 똑같이 평가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지금,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은 우리의 판단을 해야 합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가끔은 하나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감내해야 하므로 선택을 망설이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골라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 어떤 주장이 진실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과거를 되짚어 보고 현재에 더 나은 선택을 함으로써 괜찮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음미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실들을 골라낼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선택할 것인지,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듣고, 읽을 것인지, 그리하여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역사서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역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정리편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최경석 지음, 살림FRIENDS
학창 시절에 역사 과목을 좋아하셨나요? 세계사 시간이든 국사 시간이든 꾸벅꾸벅 졸면서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연도를 달달 외우던 그 시간이 제겐 참 고역이었습니다. 좀 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고 역사를 재미있게 배웠더라면 이렇게 사.알.못.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랬던 제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졸지 않고 읽어낸 책입니다.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부제 때문에 너무 가벼운 책은 아닐까 하는 고민은 접으시기를. 가볍다기보다는 꼭 필요한 내용만 적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국사와 세계사를 아우르며 역사서와 역사가에 대한 개론을 잘 정리했습니다. 컬러 일러스트가 이해를 돕습니다. 에드워드 카의 책은 너무 지루하고 어렵지 않을까 고민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위대한 역사가 두 명을 만나다
「랑케 & 카」
조지형 지음, 김영사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두 명의 역사가를 만나봅니다. 에드워드 카에게 영향을 준 랑케의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었지만, 랑케가 쓴 책보다 랑케를 분석한 책이 더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레오폴트 폰 랑케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랑케는 사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으뜸으로 칩니다. 역사가는 사실만을 제시해야 하며 자신의 주관이나 평가를 내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지요. 그러나 에드워드 카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주관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는 랑케와 역사가의 입장을 강조하는 카의 입장을 비교해 보며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택현 역, 까치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처음 받았던 과제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원서로 읽고 요약해 오기였습니다. 원서는 엄두가 안 나서 번역판을 읽고 요약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당대의 필독서였기 때문에 한 번쯤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카에 따르면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며, 랑케의 말대로 사실만을 나열한다면 역사가가 아닌 문헌학자와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지만 역사가는 현재에 삽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선택을 받은 사실이지요.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일지라도 역사는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역사」에서 이 책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지식인 사회가 도달한 최고 수준의 지성’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지성에 도전하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역사로 남은 역사서와 역사가들
「역사의 역사」
유시민 지음, 돌베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로 쓰는 사람을 역사가라고 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역사학자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둘 다 히스토리언(historian)이지만 둘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임을 분명히 합니다. 사실 없이 역사를 쓸 수도 없지만, 사실만을 기록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지요. 저자는 역사학은 학문이고, 역사서술은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를, 역사 이론서가 아니라 역사서를 주로 다룹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전쟁, 사마천이 다룬 인간군상, 랑케와 마르크스, 에드워드 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역사학, 현대 문명을 바라보는 토인비, 헌팅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까지 넘나듭니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의 크기를 가늠하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글쓴이 배나영은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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