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를 거의 마쳐가고 있을 때쯤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형 난데요, 오늘 저녁 우리 집에 와 주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와 보면 알아요!” 후배 해준이가 저녁 식사 초대를 한 것이었다. 평소 삼겹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친구라 넌지시 한 가지를 물어봤다. “해준아, 삼겹살 좀 사 가랴?” “그냥 오이소! 삼겹살 사 오면 안 돼요.” 뜻밖이었다. 저녁 식사 초대에 빈손으로 가면 머쓱할 듯싶어 물어봤는데, 뜻밖에 단호한 대답에 잠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빈손으로 오이소!” 과연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해준이는 뭐 그리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집 앞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뭐가 그리 좋으니?” “집에 들어가서 가르쳐 줄게요.” “애인이라도 생겼니?” “애인보다 더 좋은 거.”
해준이의 집을 다시 찾은 지 1년이 되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하며 신발들이 보였다. 바로 엊그제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서자, 사뭇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해준이가 혼자 사는 탓에 1년 전 화장실 풍경은 정리정돈 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배열된 치약, 칫솔로 핀잔을 줬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렁각시가 나타나 매일매일 청소하며 관리해 주는 듯한 느낌 이랄까. “해준이 점점 수상해. 살림이라도 차렸니?” “하하하!” “배고프지예! 이리와 저녁부터 드시소.” 경상도 친구라 서울 표준말과 경상도 사투리 뒤섞여 나오곤 했다. “뭘 차려 놓았길래 숨돌릴 틈도 없이 저녁 식사를 권할까?” 주방으로 들어섰다. ‘와! 이게 뭐지?’ 해준이를 떠올리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림의 식탁 풍경이었다. 닭 가슴살, 채소 샐러드, 달걀흰자…. “삼겹살은 안 보이네.” “내 삼겹살 끊었소.” “정말?”
식탁에 앉자마자 해준이의 얘기는 시작되었다. 얼마 전, 배가 자꾸 나와 병원에 갔더니 복부 비만으로 진단이 나왔고 의사 선생님이 운동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권유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헬스클럽 가서 등록을 했고, 헬스 트레이너는 닭 가슴살과 달걀흰자 얘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평소 삼겹살을 좋아하긴 했지만 비만은 거리가 멀어서 안심했던 해준이에게 복부 비만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이런 것만 먹고 버틸 수 있겠니?” “일단 뱃살을 빼야 하지 않겠는겨!” 해준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삼겹살을 과감히 버리고 달걀흰자를 선택했을 때는 비장한 결심이 숨어 있었으리라.
닭 가슴살과 달걀흰자는 TV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나의 눈앞에 나란히 놓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해준이의 정성이 담긴 저녁 식사를 마쳤다. 늘 밥이나 찌개국이 나의 저녁 식사 메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편견이었다. 샐러드 한 접시도 훌륭한 저녁 만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준이 덕분에 색다른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도 이제 건강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해봐야겠다. 고마워.” 후배의 저녁 식사 초대는 의외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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