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아침 식사 횟수가 늘어났다. 아침밥과 함께하는 귀여운 녀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음식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지만 한 끼 때우기엔 금상첨화라 빼먹지 않는다. 고소한 향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몸에 좋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것은 바로바로 ‘들기름’이다. 들기름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영상이 함께 떠오른다. 널따란 깻잎 밭도 생각나고 추수하고 난 뒤 들깨를 털기 위한 파란색 호루도 친근하다. 더불어 들깨 알알을 얻기 위해 사용했던 키도 참 정겹다.
코끝을 자극하는 들기름을 음미하면서 한 숟가락 가득 따라 밥 위에 골고루 끼얹고 한 숟가락 더 따라 밥 위에 얹고 나면 하얀 쌀밥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여기에 간장 한 숟가락이면 맛있는 식사 준비는 완료되고, 숟가락으로 위아래 아래위로 섞어주면 군침 도는 아침 식사가 된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의 행복한 한 끼다.
언젠가 TV에 나온 전문의가 참기름보다는 들기름이 더 좋다는 말을 한 후로부터 들기름 사랑이 더욱 가속되었는지 모르겠다. 좋은 들기름을 사기 위해 과감하게 대형마트를 버리고 전통시장을 고집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줄줄이 늘어선 기름집들을 오르내리면서 어떤 집이 가장 좋을까 고민했던 때가 생각난다. 진열대에 빼곡하게 진열된 중국산 들기름들을 보면서 갓 볶아낸 들깨를 가지고 국내산 들기름을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다. 지금도 한 달에 한번 찾아가는 단골집이 그때 노력의 결과물이다.
“사장님, 국내산 들기름 있어요?”라는 물음에 넉살 좋은 주인장은 나를 잡아끌고 직접 기름 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게 국산 들깨입니다. 윤기가 좔좔 흐르죠?” “그렇긴 하건 같은데….” 뒤끝을 흐리자 국산 들기름의 진심을 담기 위해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였고, 말의 속도와 톤을 높였다. 그리고 금방 짜낸 들기름에서 나온 듯한 깻묵 조각을 내미셨다. 향이 고소했다.
한때 깻묵도 맛 나는 간식거리일 때가 있었다. 알찬 들깨들을 몇 번의 헹굼 과정을 거쳐 물기를 짜낸 후 엄마는 방앗간으로 향하셨고, 나는 엄마를 따라 먼 길을 동행했다. 한참을 걷고 난 뒤 허기가 질 때쯤 방앗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반갑게 맞이해주시던 방앗간 주인장은 고생했다며 갓 나온 깻묵 한 조각을 내 손에 쥐여 주시곤 했다. 고소한 향이 가득 밴 깻묵이 씹으면 씹을수록 참 맛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크기와 모양이 사뭇 다른 깻묵과 마주하면서 다소 놀라기도 했었지만, 그 맛은 변함이 없었다. 갓 짜낸 들기름을 가져가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자 주인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포장을 시작했다. 신문지로 둘둘 말은 후 까만 봉지에 담았다. 지갑을 열어 돈을 건네자, 들기름에 대한 주의사항 두세 가지를 읊어 대기 시작했다. “들기름은 개봉을 하면 금방 상할 수 있으니 꼭 냉장 보관해야 합니다.” “친절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맛있는 들기름을 먹고 자 한다면 꼭 그 가게를 찾게 되었다.
한 공기 가득 담긴 아침밥을 오늘도 맛있게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잘 챙겨 먹다 보니 하루 세끼를 잘 찾아 먹게 되었고, 하루하루 활력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들기름은 좋은 기름으로서의 긍정적인 면 외에 나에게 있어서는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게 만드는 계기까지 마련해 줬으니 오늘도 들기름 사랑이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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