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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여행기] 캄보디아, 선상난민과 맨발의 아이들

by 앰코인스토리 - 2015. 8. 3.


전날, 천 년을 품었다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구경하고 아침 일찍 동양 최대의 호수라는 톤레삽(Tonle Sap Lake)으로 향했다. 도로 왼쪽에는 부유 촌이, 오른쪽으로는 빈민촌이 늘어서 있었다. 부유 촌은 그런대로 가옥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빈민촌은 돼지우리 비슷한 모양새다.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보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 이들의 갈등이 심할 것 같았지만, 빈부는 부처의 은덕이라면서 태연하게 살아간다.



일행이 탄 보트에는 어린이 한 명도 같이 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웃음기라고는 없었다. 아이는 배가 출발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가냘픈 손으로 어깨를 주물러 주고는 손을 벌렸다. 가이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입구에서 넝마주이 옷을 입고 아이를 들쳐 업은 여인은 돈 잘 쓰는 한국인 관광객으로부터 하루에 10달러도 벌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잘해야 3달러밖에 못 벌어서 그만두는 이가 많아 주인이 죽을 지경이라며 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의 안쓰러운 모습에 7,000원을 건네주었다.


호수 주변으로는 보트 위에 지은 초라한 가옥들이 군락을 이루고, 그 안에는 1,000여 명이 어업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구걸로 생계를 이어간다. 자그마한 성당도 있고 학교도 있고 공작소도 보였다. 베트남전쟁 때 피신한 월남인들이 해방 후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으로 살아가는 가슴 아픈 곳이다. 배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따라붙는 소형보트가 여러 척이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뱀을 목에 두르게 하고는 사진을 찍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에게 돈을 요구했다. 마음 착한 일부 일행들은 이들에게도 각각 천 원씩 해서 5,000원을 나누어 주었다.



인공호수라는 바라이(Baray)에 내리니, 얼굴은 까맣게 타고 가냘픈 어깨에 행상용 좌판을 맨 7~13살 먹은듯한 어린이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사모님, 날씬해요!”,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살아!”,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를 연신 부르며 실로 만든 팔찌를 사달라고 아우성이다. 산책길을 줄곧 따라오면서도 “나 학교 갔다 와서 하나도 못 팔았어.”란다. 안쓰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두 아이에게 천 원씩을 주었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들의 성공을 지켜보고 있던 다섯 명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따라붙는다. 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천 원!”을 반복하면서도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길에 나타난 지렁이를 집어 던지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었다. 불현듯, 어릴 때 미군들에게 “초콜릿 오케이! 추잉검 기브 미!”라고 외치던 모습이 떠올라, 또 일행은 다시 5,000원을 꺼냈다. 헤어질 때 아이들은 “아저씨, 성공하세요. 사모님,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사찰. 사원의 한가운데는 캄보디아 내전의 처절한 흔적인 인간 해골이 투명한 유리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일행은 20여 년 전에 본 《킬링 필드(Killing Fields])》라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전쟁의 참혹함에 치를 떨었다. 씨엠립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그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한 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이 정도 발전을 이룩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