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면 꼭 먹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음식이 있다. 바로 옛날 돈가스!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먹게 되었다. 참 오래 걸린 것 같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거의 10년 언저리쯤이다.
추억이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는 음식 중 하나인, 옛날 돈가스. 주위에 경양식집이 없어 구경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도 가격이 제법 나가서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고 더 주눅들게 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익숙했던 때라 포크와 나이프는 많이 어색했다.
포크를 오른손으로 들어야 하는지, 왼손으로 들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는 참 고민거리였다. 서양음식이다 보니 순서와 절차가 복잡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자신이 없었다. 같이 가는 누군가가 알려 준다면 그나마 마음이 진정되련만, 주위에도 경양식집을 가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끌고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도시적인 외모와 지적인 향기를 가지고 계셨던 선생님이 우리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큰 맘을 먹은 것이다. 그렇게 염원하던 돈가스를 쏜다고 하셨다. 미술부원 다섯 명과 찾았던 경양식집은 그야말로 서양식 분위기가 가득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조용하고 단아하고 아늑한 실내가 서양의 어느 가정집을 찾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테이블 위로 포크와 나이프가 놓였을 때,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우리 중 돈가스를 먹어 본 사람은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그러면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 눈치 빠른 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시작하셨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열정 어린 모습은 미술 수업을 할 때와 비슷했다. “나이프는 오른손, 포크는 왼손.” 우리는 그대로 따라했다. 그리고 “이렇게 써는 거다. 알았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자세하게 시범을 보이셨다.
당시 두툼한 살이 많지 않았던 돈가스는 고기를 먹기보다는 바삭바삭 과자를 먹는 듯 느껴졌다. 빵, 밥, 기다란 단무지, 그리고 케첩과 마요네즈로 버무린 양배추를 돈가스와 함께 먹었다. 처음 접하는 음식이라 호기심은 가득했지만, 점점 튀김의 기름과 느끼함이 느껴졌다. 고추장과 김치 한 조각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돈가스가 생각나면 경양식집을 찾아 친구들과 혹은 아는 사람들과 돈가스나 생선가스를 먹기도 했다. 나이프는 오른손, 포크는 왼손임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옛날 돈가스를 먹을 공간이 점점 사라져 갔다. 오히려 가까운 곳에서 살이 두툼한 돈가스를 먹기는 쉬워졌다. 생 돈가스라며 옛날 돈가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맛을 자랑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옛날 돈가스를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가 선물해 준 배달쿠폰이 생각나 배달앱을 여기저기 뒤져보았다. 혹시나 아직도 옛날 돈가스 하는 집들이 남아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돈가스집을 찾았다. 비록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먹는 돈가스는 아닐지라도 옛날 추억은 듬뿍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넓은 상자 안에 예전에 보았던 음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혼자서 먹는 만찬이라 순서와 격식은 필요 없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그냥 먹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텐데, 그래도 하나하나 순서에 맞춰가고 싶었다. 따뜻한 크림스프의 부드러움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오늘은 꽤 오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시간인 듯 보내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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