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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리와 친해지기

[와인과 친해지기] 결혼기념일과 와인 이야기

by 앰코인스토리 - 2015. 4. 24.

필리핀으로 파견 후에 맞이하게 된 결혼기념일! 오랜만에 외식을 해야 할 터인데 모든 것이 낯선 타지에서 선뜻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필리핀 맛집에 대한 정보도 무척 적었다. 특히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은 고작 몇 집만이 개인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정도였으니. 점점 기념일은 다가오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어 고민하던 차,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10년 전에 보라카이로 가족여행을 갔던 때,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아 알라방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그 날 밤에 갔던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의 야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오래 전에 파견 나온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 호텔에 라운지 레스토랑이 아직 있고 가격 대비 맛도 괜찮고 야경 또한 좋다고 한다. 필자는 주저 없이 외식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그 호텔. 당시에는 깔끔하고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역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호텔도 많이 낡아있었다. 온종일 더웠던 그날,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고, 빗줄기를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야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야외 테라스에서 호수 쪽을 바라본 전경


▲ 언제나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와인 글라스들


10년 전만 해도 엄마와 아빠 손을 꼭 잡고 걸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훌쩍 커버려 각자 메뉴를 하나씩 고를 정도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쁘기도 했고 흘러버린 세월에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핑계로 좋은 와인을 한번 먹어보려고 했는데 아뿔싸! 이곳에서 가장 괜찮다는 와인이 켄달젝슨 빈트너스 리저브라는 레드와인이었다. 호텔이라 당연 좋은 와인이 있을 줄 알고 그냥 왔는데…. 와인을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침 만나보지 못했던 웬티 와이너리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주문했는데 보관상태가 열악했는지 이미 꺾여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웬티 와이너리는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여러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는데 그중 리바렌치 샤도네이가 일품이다)


▲ 웬티 서던 힐스 카베르네 소비뇽 2011


▲ 카베르네 소비뇽임에도 불구하고 색이 너무 옅어 꼭 오래된 빈티지 와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름다운 전망과 가격대비 훌륭한 음식들에 묻혀, 꺾인 와인조차도 훌륭한 들러리가 되어주었다. 내년 결혼기념일에는 좋은 와인을 아내 몰래 준비해서 깜짝 놀래켜주고 싶다. 아이들도 한 모금 정도씩 나눠주면서 말이다. 혹시 결혼기념일이 곧 다가오는 분이라면, 의미있는 와인을 준비하는 근사한 저녁식사를 만들어보시길.


나름대로 의미있는 와인을 추천해보자면, ‘결혼한 연도의 빈티지 와인’이 괜찮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날인 결혼식을 치렀던 해에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또 그 와인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자칫 저녁식사 한 끼로 끝나는 연중 행사가 아닌 조금은 더 특별한 기념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신혼여행을 갔던 지역의 와인이라면 신혼여행 당시의 기억도 같이 떠올라 더욱 행복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