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파원] 99세 시인의 이야기,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벌써 2023년의 마지막 달을 맞았습니다. 언제나처럼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문득 떠오르는 한 분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진출처 : https://www2.nhk.or.jp/archives/articles/?id=D0009250375_00000

10년 전, 처음 이 분의 이야기를 TV에서 보았을 때 참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별로 상관없이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이분이 90이라는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하신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문득문득 떠오르고 처음 느꼈던 느낌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젊음이 지나면 삶을 다 살았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이 분이 살아낸 그 시대에는 60살만 넘어도 슬슬 인생을 정리하며 사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언가를 60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다는 것은 철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 시대의 통념이었을 법한데, 이 분은 마지막까지 진솔한 삶을 살아내었다는 게 이 나이 되니 대단하시다는 느낌과 동시에 궁금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젊었던 필자는 이 분의 시가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연세에도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었지요. 그러나 해를 더하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깊이 이 분의 시가 공감되고 마음에 와닿는 건 왜일까요? 아마 이제는 이 분이 살아낸 삶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생겨서 그런 걸까요?

 

영상출처 : https://youtu.be/-k3M_Fxorz0

 

이 분의 이름은 시바타 도요(柴田トヨ)입니다. 100세를 살아낸 분 같지 않게 고움이 남아있고 눈매의 선함이 100년의 세월을 악하지 않게 용케도 버텨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인상입니다. 시바타상이 처음 시집을 발매한 것은 98세였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92세부터고요. 나이가 들며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시바타상을 보며 아들 부부가 안타까워하던 중 시인이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시를 써 보실 것을 권하였던 게 계기가 되어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98세에 자비로 시집을 발간할 때 자신의 장례비로 저금해 두었던 돈을 사용하였다는 대목에서는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서도 시작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터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 분의 시를 좋아했던 많은 독자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시바타상의 인생이 녹아 있는 시집은 삶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힘이 있어 부모님, 친구, 지인들에게 선물되었습니다. 또한, 시집 <약해지지마>를 읽은 독자들이 많은 용기를 얻고 감사의 엽서들을 보낸 것만 보아도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바타상의 시집은 발매 후 6개월 만에 70만 부가 판매될 만큼 일본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한 화제였습니다. 이 분의 시에는 쉽지 않았던 90여 년의 인생을 긍정으로 풀어낸 힘과 지혜, 세상을 향한 애정이 담뿍 녹아 있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는 2013년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1911년생인 시바타상은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십대 때 아버지의 가산 탕진으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통식 여관이나 요리점 등에서 일하며 지내던 중 20대에 결혼을 했으나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늦은 나이 33세에 요리사였던 남편과 다시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하나 낳고 키우며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순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의 삶이 녹아 있는 순수하고 솔직한 시는 평범하고 온화한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해 주는 듯 다가오지 않았나 싶네요. 초고령 사회인 일본이 고독사의 두려움 등으로 어두웠던 사회에 밝고 유쾌한 용기를 주는 따뜻한 선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모든 시에는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꾹꾹 눌러 담아 있다는 생각도 버릴 수가 없네요.

 

시인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았던 시를 소개합니다. 필자도 이 시를 대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드는 시입니다.

 

약해지지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앰코인스토리 가족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100살을 살아낸 분의 진심 어린 충고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요? ‘그래 맞아, 약해지지 말자!’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다음 시도 한 번 감상해 보겠습니다.

 

저금 / 시바타 도요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 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아침은 올 거야 / 시바타 도요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바람과 햇살과 나 / 시바다 도요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길래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끝까지 고집 부리지 말고

편하게 가는 게 좋아

 

다같이 웃었던 오후

 

너에게 / 시바다 도요

 

못한다고

주눅 들지 마

나도 아흔여섯 해 동안

못한 일들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잖아,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자, 일어서서

다시 해보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 분의 시를 감상하고 있으면 소확행이 성큼 내게로 다가옴이 느껴집니다. 내게 있는 수많은 감사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띄고 하루가 행복한 것들로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영상출처 : https://youtu.be/IIKCNkYBynk

 

오랜 세월 함께할 수 있었던 회사 동료들, 그 분들과 함께 걸어오며 헤쳐 나온 많은 일들, 무던히 내 옆을 지켜준 든든한 남편, 언제나 내 편으로 나를 신뢰해 주고 응원해준 자녀들, 아침에 출근하며 느끼는 새로운 하루의 상큼함, 더운 날 회사 현관에 들어섰을 때 구원같이 느껴지는 에어컨의 시원함, 건강하여 가고 싶은 곳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쌀쌀한 날 내 손에 품어진 따뜻한 차 한 잔 등 셀 수 없이 소중한 것들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합니다.

 

앰코인스토리 가족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사로 기쁨으로 잘했다고 자신에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새로운 한 해가 주어진다면 더 해보고 싶은 많은 것들로 가슴이 설레길 바랍니다.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도 멋진 목표를 세워보시고 그 목표로 건강하게 삶을 사랑하며 시작하시길 기대합니다.

 

By 유행순  | ATK 고객만족팀과 ATJ 영업을 거쳐 현지에 안착한 Amkor인으로, 일본에서 직장생활과 생생한 현지 생활담을 앰코인 가족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