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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영화 속 음악] 1970년대에 대한 낭만적이고 우울한 단상, 바보들의 행진

by 앰코인스토리 - 2015. 3. 20.

예전 초등학교 시절 TV를 통해 접했던 《바보들의 행진》은 여러모로 한국영화에 대한 필자의 선입견을 깨부숴버린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그러기까지는 필자가 중학교에 진학해서였지만, 그 영화가 준 충격은 대단했지요. 영화의 전반부 송창식의 ‘왜 불러’가 흐르면 장발 단속을 피해 도망 다니는 당시 1970년대 중반 신촌 일대의 청춘들과 그들을 쫓아가는 경관이 상관을 만나자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씬에서는 당대의 공권력을 조롱하며, 교내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따귀를 때리는 기성세대에게 영철이는 뺨을 재차 내밀음으로써 기성세대에 대한 반기를 듭니다.

 

▲ 《바보들의 행진》 포스터

 

무엇보다, 영화 구석구석에 내포된 당대 현실의 허무 미학과 낭만의 묘한 조화는 극 중 삽입곡들인 송창식의 ‘왜 불러’, ‘고래사냥’, 그리고 김상배의 허무주의의 극치인 ‘날이 갈수록’을 통해 더욱 배가되며, 영화 속 동시대 청춘들의 또 다른 자화상의 원형을 제공하지요. 바로 그러한 조롱과 야유의 요소, 그리고 당대의 현실에 대한 허무와 낭만의 조화가 바로 《바보들의 행진》의 힘이자 이 영화를 지탱하는 원동력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하길종’이라는 당대의 영화적 천재의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일찍이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에어 프랑스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시작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세례를 받은 후 도미, 미국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본격적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문화적 쇼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1969년 UCLA 영화과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발표한 《병사의 제전(The Ritual For A Soldier)》으로 MGM영화사에서 매해 미국 영화학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인재 4명에게 수여하는 메이어 그랜드상을 수상하며, 영화적 재능을 인정받습니다.

 

▲ 《병사의 제전》과 하길종 감독

 

그러나 미국 내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에 대한 거절할 수 없는 향수로 인해 귀국을 결심, 귀국 후 “한국영화의 새로운 주류는 없다. 모든 것들이 표절과 재탕뿐이다.”라는 직설적인 발언으로 한국영화에 도발적인 비평적 테러를 감행합니다. 그의 귀국 후 첫 데뷔작이자 한국영화 사상 동성애적 코드를 최초로 사회적 문제와 결부시켜 심도 있게 다룬 문제작 《화분》(1972)을 시작으로 검열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수절》(1973)을 거치며, 수차례 당대 한국사회와 당시 영화계의 검열과 제지 뒤에 그의 한국영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결집체로써 만든 영화가 바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할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이었습니다.

 

▲ 《화분》과 《수절》

 

이 영화가 1970년대의 청춘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낭만과 추억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영화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그들의 이상적 구현을 고래를 잡으러 동해로 가겠다는 영철의 죽음과 병태의 입대로 좌절되고 마는 설정으로 끝을 맺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연출한 하길종 감독 또한 4년 후 요절하고 말지요. 마치 극 중 영철이 늘상 입버릇처럼 “내 마음속의 고래를 잡으러 떠나겠다.”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남긴 채 동해에 몸을 던진 것처럼, 하길종 감독 또한 내 마음속의 영화를 찾아 ‘영화의 나라’로 직행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적절한 표현이겠지요.

 

이 영화 《바보들의 행진》 또한 검열이라는 시대의 칼날에 의해 무려 20여 분 잘려나가거나 일부 수정된 편집본으로 상영되는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나, 영화 중간중간 복류하고 있는 당대의 너무나도 낭만적인, 그러나 우울했던 1970년대에 대한 초상은 여전히 남았으니 이른바 ‘시네마틱 파워’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의 으뜸 미덕은 바로 당대 시대상의 반영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을까요?

 

▲ 《바보들의 행진》 속 장면

 

그런데 이 영화가 제작된 해가 1975년, 필자는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거늘 꼭 그 시대를 산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면 역시나 필자 또한 참 2015년이란 당대 현실이 우울하긴 우울한가 봅니다. 즉, 어느 시대나 ‘왜 불러’의 야유와 조롱, 그리고 ‘고래사냥’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 그리고 ‘날이 갈수록’의 삶에 대한 비애와 허무가 드러나긴 마련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삶에 대한 너무나 처절한 투영, 즉 프리즘(prism)을 이 영화에서 모두 보았다면 그건 필자의 지나친 과장일까요?

 

▲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의 키스 씬

 

사족 : 십 년 전 우연히 동네 비디오 가게를 지나다가 정우시네마에서 1990년에 출시된 《바보들의 행진》을 단돈 천 원에 구매했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란! 화질은 볼품없었지만 병태가 탄 입영열차를 배경으로 영자가 헌병의 도움을 받아 병태와 키스하는 라스트 씬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말았으니까요. 요즘 등장하는 최첨단 CG를 동원한 성조기 블록버스터 또는 아이돌 주연의 영화조차도 그런 장면을 절대 연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필자는 그날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게 해준 신께 감사했습니다.

 

동영상 :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4:28)

영상출처 : 

https://youtu.be/6dFaxvaCyMc

 


바보들의 행진 (1975)

The March of Fools 
9
감독
하길종
출연
윤문섭, 하재영, 이영옥, 김영숙, 김상배
정보
코미디 | 한국 | 117 분 | 1975-05-31
 

 


왜 불러

아티스트
송창식
앨범명
골든 제2집
발매
198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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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아티스트
송창식
앨범명
골든 제2집
발매
198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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