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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파원] 한인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 이수현 군 이야기

by 앰코인스토리.. 2023. 8. 14.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사람들은 피서를 가는데 필자의 동네 신주쿠의 신오쿠보 거리는 이 더위에도 인산인해입니다. 일본에 파견 와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필자로서는 이젠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지요.

 

신오쿠보(新大久保)! 현재는 한인타운의 거리로 ‘동경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신오오쿠보의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시부야나 하라쥬쿠가 신세대들이 꼭 가야 할 장소였지요.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생이나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년 세대까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대두되는 곳이 신오쿠보입니다. 거리에 여행 가방을 끌고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객 같은 인파들이 많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요, 모두 신오쿠보의 한인타운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국식품부터, 화장품, K스타 상품 등등을 사서 담아가려는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참 기분 좋고 고마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한국과 일본은 참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 미해결된 갈등과 상처 등이 그 이유겠지요. 그런 관계의 흐름 속에 한 사건이 발행했습니다. 2001년도 1월 26일 저녁 7시 15분경에 신오쿠보역에서 일어난 인명 사고였던 이수현 군의 사고입니다.

 

▲이수현 군의 모습 ( 사진출처 : www.soohyunlee.com)

신오쿠보역은 우리나라의 2호선처럼 동경의 인구 이동이 가장 많은 곳을 순환하는 순환전철입니다. 그 시절만 해도 한국인 유학생들은 신문 장학생들이 많았고, 주로 공부는 잘하지만 유학 갈 형편은 힘든, 실력 있는 한국 학생들이 문부성 국비 장학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중 생활형편이 여유로운 가정에서 일본어 어학연수를 오기도 했지만 누구든지 일본에 유학생으로 오면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원화로 엔화의 생활이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수현 군 역시 한국에서 고려대학교에 재학하다가 일본에 아카몽카이라고 하는 일본어 어학원에 유학을 왔다고 합니다. 아카몽카이는 니뽀리에 있는 어학원이었고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어학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한국인들은 문법이 같아 빨리 일본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카몽카이에서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1년, 빠르면 6개월에도 1급 일본어 능력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높았던 어학원이었습니다.

 

이수현 군도 아마 그런 이유로 아까몽카이에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야마노테센을 타면 니뽀리에서 신오쿠보까지 한 번에 올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은 신오쿠보나 신주쿠에 몇 개의 한국상점이 있는 정도였지만, 이수현 군은 신오쿠보에 있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있던 그 날은 원래 퇴근하던 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더 늦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컴퓨터가 고장 난 것이 있었고 수현 군이 그걸 고치느라 알바 시간이 끝난 후 컴퓨터를 고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언제나처럼 신오쿠보역으로 귀가하던 길이었지요. 이수현 군이 신오쿠보역으로 올라왔을 때 사카모토 세이코라고 하는 일본인이 편의점에서 구입한 술을 먹고 취해 플랫폼에서 선로로 떨어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때 이수현 군이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때 사진작가인 세키네시로상도 요코하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신오쿠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이 상황을 보고 같이 뛰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동차는 신오쿠보역에 진입하고 있었고 급하게 급정거를 걸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세 사람 사카모토 세이코, 이수현, 그리고 세키네시로 모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신오쿠보역에 있는 추모비 (사진출처 : 위키백과)

이 사건은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이수현 군이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관계도 없는 일본사람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역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이수현 군처럼 망설임 없이 그 사람을 구하려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수현 군은 사카모토상이 떨어지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선로로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사건의 영향력은 참으로 컸습니다. 그 당시 총리였던 모리요시로 전 내각총리는 희생자 두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고 일본 경시청은 경찰 협력장을 수여했습니다. 또한 이수현 군에게는 국민훈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큰 변화 중에 하나가, 이 사건 이후 일본 국토교통성은 일본 전국 1700개 역에 열차 비상정지 버튼을 설치했고, 추락감지 매트를 정비했으며, 또한 플랫폼 아래 여유 공간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신오쿠보역도 그때 이후 플랫폼 아래 여유 공간을 확장하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야마노테센의 운영회사인 JR 동일본에서는 사고의 원인이 역 안의 매점에서 주류를 판매해서 취객이 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하여 2005년까지 역 구내매점에서의 주류 판매를 중단하였습니다. 이후 2010년부터 야마노테센은 스크린 도어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신오쿠보역에 설치된 스크린 도어 (사진출처 : 위키백과)
▲신오쿠보역에 설치된 안전장치 (사진출처 : 위키백과)

이수현 군의 사망 후 신오쿠보역에는 추모 조형물이 역 구내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이수현 군이 사망한 그날에 한국에서 그의 어머니가 신오쿠보역에 가서 일본인들과 함께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수현 군의 신오쿠보에서 있었던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2007년에 개봉된 <너를 잊지 않을 거야>입니다. 다른 또 한 명의 희생자, 사진작가였던 요노스케상을 모델로한 소설 <요노스케 이야기>가 작가 요시다 슈이치상에 의해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는 추모비 (사진출처 : 위키백과)

마지막으로 이수현 군에게 보낸 모리 요시로 전 내각의 편지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간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勇気ある行為を称える辞

용기 있는 행위를 기리는 서

 

平成13年1月26日にJR山手線新大久保駅において、線路に転落した男性を救出しようとして線路に降り立った、カメラマンの関根史郎さん(47歳)及び韓国人留学生の李秀賢さん(26歳)が、到着した電車にはねられ、尊い犠牲となられました。森総理は、お二人の勇気ある行為をたたえ、弔意を表する以下のような書状を差し上げました。

あなたは平成十三年一月二十六日JR山手線新大久保駅において線路に転落した者を身の危険をかえりみることなく救出しようとして貴い犠牲となられました

あなたの人命を重んずる真に勇気ある行為を心から称えるとともにここに謹んで深く弔意を表します

헤이세이 13년(2001년) 1월 26일에 JR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남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선로에 스스로 내려간 카메라맨 세키네시로 씨(47세) 및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26세)가 도착한 열차에 치어 존엄한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모리 총리는 두 분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리며 조의를 표하는 아래의 서장을 보냈습니다.

귀하는 헤이세이 13년 1월 26일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자를, 본인의 신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구출하고자 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귀하의 인명을 중히 생각하는 실로 용기 있는 행위를 마음 깊이 기림과 동시에, 여기에 삼가 고인에 대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平成十三年一月二十九日

헤이세이 13년 1월 29일

内閣総理大臣 森喜朗[2]

내각총리대신 모리 요시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모리 요시로 전 내각총리의 서간[편집]

大韓民国大統領

대한민국 대통령

金大中 閣下

김대중 각하

 

貴国の青年が日本人を助けようとして、自らの尊い命を失ったことを昨日ダボスより帰国して知りました。私は、全ての日本国民、そして閣下をはじめとする全ての韓国の皆様とともに、深い悲しみを感じております。亡くなられた李秀賢君の葬儀に先程出席し、ご両親に対し、心よりのお悔やみと感謝の気持ちを直接お伝えし、お慰め申し上げました。

李秀賢君の勇気ある崇高な行動は、日本国民に大きな感動を与えました。我が国と貴国の友情の架け橋となった李君のご冥福を心からお祈りすると共に、その勇気をたたえ、ご遺族と、韓国国民の皆様に限りない敬意を表します。

귀국의 청년이 일본인을 구하고자 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잃은 것을, 어제 다보스에서 귀국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본 국민, 그리고 각하를 비롯한 모든 한국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서 돌아가신 이수현 군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수현 군의 부모님께도 진심으로 조의 및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하고 위로하여 드렸습니다.

이수현 군의 용기 있는 숭고한 행동은 일본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와 귀국의 우정의 가교가 된 이수현 군의 명목을 진심으로 빌며 그 용기를 기리고, 유가족 및 한국 국민 여러분께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日本国内閣総理大臣 森喜朗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모리 요시로

平成13年1月29日

헤이세이 13년 1월 29일

 

영상출처 : https://youtu.be/XDsgcxbmjfs

 

2001년 이 사건 이후 한일 관계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습니다. 2002년에 한일 공동으로 개최된 월드컵이 그렇고, <겨울 연가>라는 드라마로 욘사마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호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그 후의 신오쿠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