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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자연에서 배우는 과학] 문어 빨판과 접착제

by 앰코인스토리.. 2022. 9. 22.

신화 속 바다 괴물이 가진 비밀
문어 빨판과 접착제

사진출처 : https://oceanconservancy.org/wildlife-factsheet/giant-pacific-octopus/
사진출처 : 픽사베이

고대 신화 중에는 바다의 괴수 ‘크라켄’이 등장합니다. 전설 속 바다 괴물 중 가장 유명한 괴물의 하나지요.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바다 괴물의 표본으로 묘사되는 크라켄은 마치 대왕 문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팔과 빨판을 가지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대형 선박들을 부수는 모습은 많은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대형 문어는 포악하고 괴팍한 바다 괴물로 그려져 왔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물론 문어의 특성이 이렇게 사납고 난폭한 것만은 아니지요. 워낙 독특한 생김새와 거대한 몸집 때문에 억울한 이미지에 갇히게 되었지만, 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고 지능이 높아 때로 인간과 훌륭한 교감을 이뤄내기도 합니다. 무척추동물 중 지능이 가장 높아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이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문어의 생김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동그란 머리 아래 긴 팔입니다. 문어의 긴 팔에는 수많은 빨판이 달려 있지요. 흐느적거리는 팔에 수없이 많은 빨판이 붙어 있는 문어의 모습을 혐오스럽게 느끼는 분들도 많겠지만,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거기에는 생존을 위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어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도구지요.

 

문어의 여덟 개의 팔에 빼곡하게 붙은 빨판은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되는 근육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기에 전체 뉴런의 2/3 이상이 자리하고 있어 머리의 지배를 받지 않지요. 즉, 물체를 판별하거나 잡는 행위 등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답니다. 또 문어의 빨판에는 ‘화학수용기’가 달려 사람의 혀와 같이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고 주위 환경과 먹이를 탐지할 수 있습니다. 팔 하나에 약 200개의 빨판이 붙어 있다고 하니 8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는 총 1,600개의 혀를 가진 셈이네요. 각 팔은 잘린 후에도 1시간가량 그 기능이 지속된다고 하니 그 생명력 역시 감탄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빨판의 힘인데요. 빨판 하나가 15㎏까지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니 큰 대형 선박을 휘감으며 부수던 신화 속 바다 괴물 이야기가 그저 상상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성균관대 방창현 교수 연구팀은 이렇듯 강력한 문어의 빨판을 가지고 생체모방기술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개발된 패치는 물속이나 접착제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리 없이 강력한 접착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지요. 또, 패치 탈부착 시 어떠한 오염물도 남기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존의 화합물로 만든 강력한 점착 소재들은, 예를 들어 풀이나 스티커 같은 경우 소재를 제거하고 난 이후 점착력이 사라지거나 끈적거리는 오염물이 남아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하지만 빨판을 모방한 새로운 소재는 탈착 이후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고 하네요.

 

사진출처 : www.nature.com

연구진은 과연 빨판에서 어떤 기술적 아이디어를 얻은 걸까요? 연구진은 문어 빨판의 내부에 있는 구형 돌기에 주목하였습니다. 빨판 내부에 있는 독특한 돌기 구조는 접착 시에 부압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부압’이란 일종의 부분적인 진공상태예요. 원형 돌기 구조를 반영한 패치의 원리는 다음과 같지요.

 

미세 구형 돌기 구조가 반영된 음각의 빨판 컵은 접착 시에 가해진 외부 힘으로 의하여 점착 표면상의 수분을 밀어내게 되고, 남은 수분은 모세관 현상으로 인해 돌기 옆을 타고 올라가 비어있는 위쪽의 공간을 채웁니다. 여기서 ‘모세관 현상’이란 유체가 가느다란 관이나 다공성 물질 등의 좁은 공간을 타고 올라가는 성질이지요. 나무 꼭대기까지 물이 전달될 수 있는 것도 수관에 의한 물의 모세관 현상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가해진 힘이 제거되면 포집된 수분이 응집력에 의해 유지되면서 빨판 컵과 표면 사이에 높은 부압이 발생하게 되고, 높은 부압이 발생한 패치는 높은 접착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 패치는 유리 표면에서는 3N/cm^2, 수중 표면에서는 4N/cm^2, 기름 속 유리 표면에서는 15N/cm^2의 점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방창현 교수 연구팀이 새롭게 개발한 문어 빨판 모방 패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요. 탈부착 이후 오염물이 발생하지 않아 청정을 요구하는 반도체 시장, 웨어러블 시장이나 의료용 패치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영상출처 : https://youtu.be/1pm0XMpEWBg

 

여러 산업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문어의 빨판 모방 패치는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와 철저한 연구 계획 아래 개발된 것은 아니라 해요. 마트에서 쉽게 보는 문어를 주의 깊게 관찰하다 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돌파해야 할 많은 공학적 난관과 문제의 해결 키워드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이 존재하는 문어는 경험을 통한 학습이 가능하다고 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에 나오는 주인공 문어는 매일 찾아오는 자신의 인간 친구에게 장난을 걸며 친근한 행동을 하지요. 섣불리 친해지기 쉽지 않은 생김새로 인해 우리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졌던 것들이 문어 외에도 참 많지요? 굳었던 생각을 깨고, 닫혔던 마음을 열면 더 넓고 큰 세상으로 통할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