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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글레노리 노란 우체통] 오전에는 쇼팽을 읽고, 오후에는 슈베르트를 산책했다

by 에디터's 2022. 6. 15.

사진출처 : 영화 <피아니스트>

「가만히 듣는다」라는 책을 지난주에 읽었다. 서영처 작가의 책이다. 버블 껌 같은 분홍 책 커버를 열면 수많은 명곡과 천재 시인, 주옥같은 어록이 곳곳에서 들린다. 책은 읽는 것이고 음악은 듣는 것인데 시각과 청각이 촉각, 미각, 후각까지 자극하며 전방위적으로 울렸다. 귀로는 듣고 눈으로 읽으며 손으로 연주를 따라가고, 어깨는 춤을 추고 마음은 흠뻑 기뻤다. 책 속에서는 그야말로 고전음악의 향연이 더할 나위 없이 펼쳐졌다. 한 곡 한 곡 소개될 때마다 그 음을 귀로 들으면서 읽은 덕이다. 특별히 쇼팽과 슈베르트, 독일과 폴란드, 헤세와 토마스 만 대목에 더 집중했으며 밑줄을 굵게 그어 두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라는 시에는 폴란드에 대한 아련하고 멋진 구절이 나온다. 지난달 우연히 시 창작 강의에 참석해서 또 듣게 된 이 시는 짙어 가는 시드니 가을과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폴란드를 여행했던 그 기억들이 차분하게 한 장씩 소환되어 왔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외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 김광균 시 <추일서정> 중

 

가을만 되면 이 시가 입 안에 맴돌고 선배 시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주워 왔다는 도토리나무 열매를 떠올리곤 했다. 폴란드의 역사적 그림자는 깊고 저항은 대단했다. 시인은 약소국의 역사 현실과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감각적인 언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불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도 개인적으로 폴란드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애감 가운데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폴란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적지 않지만 몇몇 인물만 더 언급해보겠다.

폴란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쉼보르스카와 올가 토카르추크가 있다. 또한 쇼팽의 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빼놓을 수가 없다. <피아니스트>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유대인 대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폴란드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폴란스키 감독은 쇼팽의 음악을 배치하여 비극적인 음영과 색채를 영화 속에 잘 부각했다. <녹턴 20번 C단조>의 감미로운 선율로 비극의 전조를 몹시 아름답게 연출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명작이 되었다.
녹턴이나 왈츠가 프랑스적 세련미를 나타내는 음악이라면, 폴로네즈, 마주르카, 발라드는 폴란드의 전설과 역사, 민속음악의 리듬과 선법, 슬라브적 야성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쇼팽의 서사는 음악 언어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재현하며 당시 러시아의 폴란드 침공과 폴란드의 독립전쟁 등 역사적 공간과 갈등을 다룸으로써 음악이 역사에 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책갈피 속에 누워있는 쇼팽의 데스 마스크(death mask)가 있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래 바라보았다. 강물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듯 단정한 얼굴에는 깊이 감은 눈, 꽉 다문 입,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쇼팽의 선율이 흘렀다. 마치 자신의 연주 녹턴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듣고 있다는 것은 가만히 울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젊었을 적에는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격정적이고 힘 있는 곡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는데, 갈수록 쇼팽이나 슈베르트가 좋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마음결도 서정도 점점 섬세하고 투명해져 오래도록 입다 닳아 몸을 닮아가는 옷 같았다.
쇼팽의 음악을 보를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쩌면 보를레르의 시 <음악>이 쇼팽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의미 있는 평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구절에 공감을 했다.

 

음악은 때때로 바다처럼 나를 사로잡는다/나는 출범한다/창백한 별을 향해, 자욱한 안개 속으로/때로는 끝없는 창공 속으로/돛대처럼 부푼 가슴/앞으로 내밀고/밤에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나는 탄다.

- 보를레드 시 <음악> 중에서

 

슈베르트 가곡은 산책을 하면서 듣기에 더없이 좋다. 계단 턱과도 같아 걷다가 힘들면 걸터앉을 만하고, 지나치게 격동적일 때는 바람 한 움큼으로 털어 보기도 했다. 걸음이 느슨해지면 3 잇단음표 급한 선율이 느닷없이 뒤꿈치를 밀었다. 오후 내내 뮐러, 슈베르트, 프리드리히와 함께 시와 음악과 그림에 휩싸여 18세기 독일 낭만주의에 취해 있었다. 마치 ‘읽고 보고 듣고’라는 칵테일 한 잔을 음미하듯 미치도록 집요한 맛이 있었다. <겨울 나그네>는 연작 가곡을 통해 생의 본질과 익숙한 아름다움에 가 닿는 역동적인 여행길을 펼쳐주었다. 마침 이곳 6월의 겨울 오후 햇살은 창문 밖 단풍나무 빈 가지의 우듬지를 쓸쓸하게 휘돌고 있었다. 낮은 음역 대에서 흘러나오는 비탄과 탄식조에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파멸에 끌린다고 한다. ‘파멸은 디오니소스적 세계의 본질이다‘. 디오니소스적이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원초적인 상태를 뜻하기도 하는데, 인간은 때때로 지루한 삶을 호출하는 유혹에 대해 반기기도 한다.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늘 꿈틀대기 때문이다. 매우 친화적으로 보이는 삶의 에너지 에로스와 죽음의 에너지 타나토스의 역동적인 되풀이는 음악가들의 전유물뿐만은 아닐 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비극은 퇴화와 몰락 노쇠의 징후가 아니라 건강과 과도한 충만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기울어가는 황금색 저녁 빛이 방안 깊숙이 밀려들어 와 출렁거렸다.

 

'힘든 일 후에 먹는 따뜻한 밥'이 죽음이라는 멋진 한 마디! 오랜만에 받아보는 벅찬 기쁨과 즐거운 발견의 시간이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고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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