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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참외

by 에디터's 2022. 6. 15.

사진출처 : 크라우드 픽

노란 참외가 풍년인 듯싶다. 시장 곳곳에 노오란 참외가 가득하다. 하지만 참외를 집어 들기가 겁이 난다. 얼마 전, 맛있는 참외라며 “꼭 사드세요!”라는 장사꾼 말만 철썩 같이 믿고 비싼 값을 지불한 참외가 무보다 못한 맛을 낸 적이 있었다. 참외를 잘 고르는 법까지 유튜브를 보며 공부를 했건만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비슷한 크기와 잘생긴 모양 하며, 겉으로 봐선 참외의 속을 들여다보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모양과 맛으로 참외의 진면목을 판별했던 때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과거의 잣대로 전락된 느낌이다. 참외의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하면서 무작위로 참외를 집어 들고 즉석에서 깎아 참외의 맛을 홍보하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저기 둘러봐도 수북하게 쌓아 놓은 참외를 시식해 보라는 곳은 없다.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서 참외를 고르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다른 가게보다 유난히 아주머니들의 발길이 많이 머문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멈춰 봤다. 아직 사야 할 물건들은 있지만, 참외가 괜찮은 곳이라면 여기서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함께 몸을 맞대고 참외를 고를 자신까지는 생기지 않아 몇 사람이 계산하고 나가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기회는 왔다. 다소 공간이 생겨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보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왜 사람들이 붐볐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여느 가게와 다름없는 가격에 비슷한 크기의 참외들이 즐비했다. 참외를 홍보하는 장사꾼은 쉴 틈 없이 말을 해댔다.
“이보다 좋은 가격에 이만한 참외는 없습니다. 당도 끝내주고 가격이 저렴합니다.” “5,000원에 5개!”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멘트를 속사포같이 쏘아댔다. 이리저리 골라 봐도 마음에 드는 참외는 찾을 수 없었다. 깎아 보면 하얀 속살이 두껍고 딱딱할 것만 같은 참외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참외는 아닌데 싶었다. 결국, 어렵게 비집고 들어갔던 틈바구니에서 소득 없이 빠져나와야 했다. ‘참외를 먹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결국 오늘 참외는 어렵겠구나 싶어 자포자기 상태가 될 쯤, 광주리에 담긴 볼품없는 참외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가 보아도 상품성이 떨어질 만한 상태와 크기였다. 적당한 크기에서도 한참 모자란 상태였다. 그리고 반듯하고 깔끔한 곡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양의 참외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참외는 맛이 있다는 것을. 밭에서 아무렇게나 자랐던 참외들은 햇빛을 충분히 받으며 풀과 뒤섞여 자라, 크기에서는 뒤지지만 맛은 훌륭하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서둘러 지갑을 꺼냈다. 5,000원을 꺼냈더니 주인장은 한 봉지 가득 담아 주었다. 그리고 기분이라며 2개를 더 넣어 주었다.
참 어렵게 찾은 보석이었다. 그 많은 곳을 쏘다니며 찾고자 싶었던 물건을 손에 쥔 느낌이었다. 한 봉지의 무게가 상당했다. 5,000원을 주고 이만큼을 살 수 있을까. 괜스레 어깨까지 으쓱해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 참외를 올려놓고 칼부터 찾았다. 작은 칼을 대고 막 깎아 보려는 순간, 껍질째 먹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껍질에 좋은 성분들이 많다고 들어서 사과도 껍질째 먹는 버릇이 생겼는데, 참외도 시도를 해 볼 생각이었다. 물을 틀어 참외 껍질을 최대한 깨끗이 닦아보았다. 노란색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아, 달다!’ 순간 든 생각이었다. ‘그래, 이거다!’라는 생각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잘 샀구나!’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껍질째 먹어도 달았다. 맛이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외의 참맛이었다. 남기는 거 없이 참외 하나를 통째로 해치웠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참외를 보면서 미소가 번진다. 내일도 맛있는 참외를 먹을 수 있다. 무한 행복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이 뿌듯한 기분이 온종일 이어질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