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지만 정직했던 노동자의 발자국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6번째와 7번째 탐방지는 ‘조선기계제작소 인천공장’과 ‘공장 사택’입니다. 먼저, 공장 사택을 둘러봅니다. 모두 14개 동 49호로 구성된 사택은 1동의 단독사택과 12동의 연립사택, 1동의 근로보국대 합숙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일제가 조선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강제 징용한 노역 조직인 근로보국대 합숙소는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데요, 사택지의 서쪽 끝에 위치한 정방형의 건물은 중앙을 관통하는 복도가 있으며 좌우로 방이 연달아 배치되어 있고 복도 끝에는 공동 화장실과 식당을 두었습니다. 군수품 생산에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되었는데요, 열악한 환경에 짓밟힌 어린 꿈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최근 도시재생을 통해 일대를 재정비한 거리는 한층 깔끔하고 깨끗하게 탈바꿈되었는데요, 그것이 위로라면 위로가 될까요?
광산기계를 제작하던 조선기계제작소 인천공장은 일제가 대륙의 침략을 본격화하던 1937년 6월, 일본 종합기계회사인 요코야마공업소에 의해 만석동에 세워집니다. 이후 1938년과 1940년, 두 차례에 걸쳐 시설을 확충해 선박 기계를 생산하다, 1943년 일본군의 수송용 잠수함을 만들었습니다. 해방 이후 이곳은 한국기계공업과 대우중공업에 흡수 통합되었으며, 2005년 두산그룹에 인수되어 현재는 두산산업차량이 지게차를 생산 중이라 합니다. 출입이 통제된 공장은 담장 밖에서 그 흔적만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거대한 규모가 유구한 노동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듯합니다.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조 여성 지부장을 탄생시킨 여성 노동운동의 출발지로 의미가 큽니다. 그 전신은 1934년에 가동을 시작한 도오요방적 인천공장으로 실을 뽑는 방적공장에서 나중에는 천까지 생산하는 방직공장으로 발전합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노동자가 3천 명이 넘을 때도 있었으며 이 중 80%가 여성노동자였다고 하는데요, 열악한 환경에서 마치 기계의 일부가 되어 실을 뽑는 여공들은 잠시 손 쉴 틈도 없는 극강의 노동에서 힘겹게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고향에 보냅니다. 오빠와 동생들의 학비를 대는 것만으로 힘든 일의 보람을 느끼던 시대는 진정 ‘영자의 전성시대’입니다. 인근의 동일여자중학교는 동일방직에서 일하는 여공들을 위해 만든 학교로, 동일방직은 후에 동일레나운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공장 설비를 이전하여 면사 및 직물 상품 물류창고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도쿄시바우라전기 사택’입니다. 도쿄시바우라전기는 1943년 공장이 있는 화수사거리 길 건너와 만석동 동양방적 인천공장 인근에 사택지를 조성했는데요, 만석동 44번지 일대에는 간부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단독사택 4동과 2호 연립 3동, 4호 연립 3동이 지어졌으며 2층의 합숙소도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낡게 여겨져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한 사택은 대부분이 1층의 낮은 건물로 마당까지 건물을 확장하고 슬레브 지붕을 얹었습니다. 내부에 화장실이 없는 사택은 외부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했는데요, 마치 군대식으로 줄지어 있는 화장실의 모습이 당시의 열악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길’ 마지막은 만석동에 위치한 ‘삼화제분 인천공장’입니다. 인천의 제분공장하면 곰표가 먼저 떠오르지만, 과거 인천에는 곰표 외 수많은 제분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삼화제분 역시 그중 하나인데요, 1917년 일본인 사업가가 설립한 사이토정미소에서 시작한 공장은 해방 후 전산기업으로 운영되던 풍국제분을 거쳐 1957년, 삼화제분이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건물은 출입이 통제되어 그 안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 길 건너에서 본 공장의 모습은 여느 공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데요, 한때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 마치고 나올 때 바짓단 속에 밀가루를 숨겨 나와 집에서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총 길이 4km, 10개의 탐방소를 지나며 점점 소실되어 가는 우리 노동 역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노동자의 길’ 어떠셨나요? 고단하지만 정직했던 노동자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이 사회의 초석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광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그들의 삶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단순히 가난한 시절의 지나간 역사를 넘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삶, 짜디짠 인천 바다 내음에 서린 이들 노동자의 고단했던 삶에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Travel Tip. 노동자의 길
탐방지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안내판의 QR코드를 찍으면 온라인 탐방으로 이어집니다.
✔️ 화도진 문화원 www.hdjcc.or.kr
✔️ 탐방안내서 E-BOOK https://www.hdjcc.or.kr/user/board/view.php?board_code=pub_data&sq=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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