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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인천 여행] 근대 산업화의 중심, 인천 동구 탐방! 인천 동구 노동자의 길 1편

by 에디터's 2022. 4. 1.

근대 산업화의 중심, 인천 동구 탐방
인천 동구 노동자의 길

따사로운 햇살이 공기를 채우는 완연한 봄입니다. 탐스러운 꽃의 향연! 마른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이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앰코인스토리 가족 여러분! 이번 인천 & 광주 여행은 근대 산업화의 중심인 인천 동구를 탐방하는 일정입니다. 동인천 북광장에서 시작하는 ‘노동자의 길’로 지금부터 함께 걸어봅시다. 

소실되어 가는 노동의 역사를 되짚는다

조선 근대화의 관문이었던 인천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의 농업, 수산, 광산 등의 자원을 수탈해가는 전초기지로써 존재했습니다. 그 시절 인천에 세워진 각종 공장은 한반도의 자원을 원자재로 일본에 보내거나 군사 무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요,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이들 산업시설은 군수 물자 생산하고 근대 산업발전의 중추 역할을 담당합니다. 동인천 북광장에서 출발하는 4km의 도보길, 인천 동구 ‘노동자의 길’은 양키시장, 미림극장, 인천공작창과 도쿄시바우라 전기회사 등등, 총 10개의 탐방소를 지나며 점점 소실되어 가는 우리 노동 역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아봅니다.

 

동인천 북광장에서 시작하는 발걸음이 첫 번째 탐방지인 ‘양키시장’으로 향합니다. 송현시장 일부 지역에 형성된 시장은 전쟁이 끝나고 월미도와 부평 신촌에 주둔했던 미군 부대에서 뒷문으로 흘러나오는 각종 의류와 생활 물건들을 팔았는데요, 미제는 똥도 좋다던 시절에 값비싼 양주와 양담배, 향수, 로션, 초콜릿 등등 낯선 물건으로 가득 찬 시장은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청바지는 신문물로 젊은이들 사이 인기 만점 아이템이었지요. 사이즈가 큰 청바지는 당연히 수선이 들어가야 했는데요, 그 때문에 당시 골목에선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양키시장은 옛 영광이 퇴색되어 한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몇몇 가게들이 어디서 떼어 오는지 모를 군용품과 구제품을 팔며 그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쓸쓸하기도 합니다. 

 

시장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에 접어들면 그 너머로 ‘미림극장’이 보입니다. 인천의 가장 오래된 영화관으로 인근의 애관극장과 함께 고단한 노동자들의 유일한 놀거리로 존재했던 곳이지요. 이들 극장은 한때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는데요, 미림극장은 극장주의 애정과 시민들의 요청으로 2013년 10월,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해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천미림극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화 애호가들을 위한 고전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극장 내부를 들어서자 필름을 돌려 상영하는 당시의 극장 장비가 보입니다. 오래전 영화의 포스터들 외 추억을 상기하는 전시가 볼거리를 제공하며 그 외 극장에서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시민들에게 영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뜻깊은 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극장을 나온 발걸음이 수문통을 지나 다음 목적지를 향합니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거리는 화사함을 가득 선사합니다. 평범한 아파트 단지가 자리한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기차와 차량 부품을 생산하던 ‘인천공작창’ 터인데요, 1937년 기차와 차량 부품을 생산하던 일본차륜제조주식회사 인천공장으로 출발한 공작창은 일제강점기 군수공장으로 지정받아 군용열차의 부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광복 이후 상공부 직할의 조선차량주식회사의 인천공장, 1950년에는 철도청 인천공작창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인선에 투입되던 미카형 증기기관차의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의 협궤열차와 철도청에서 운행하는 비둘기호 역시 이곳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1983년 완전히 문을 닫은 공작창은 그 흔적만을 남긴 체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천공작창을 지나 찾아간 곳은 마른 담쟁이덩굴이 건물을 감싸고 있는 ‘도시산업선교회’입니다. 고단했던 시절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왔던 노동자들의 교회로 당시 선교회 목사들은 그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을 알려주고 노동법을 가르쳐 줍니다. 교회의 도움으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위원장을 선출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일하는 그들의 노동권을 관철하기 위해 회사와의 대립은 불가피했는데요, 1978년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동일방직의 똥물 투척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도망친 노동자들을 보호해 준 것이 도시산업선교회였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도쿄시바우라 전기 인천공장’입니다. 1938년, 일본 종합기계회사인 요코야마 공업소는 인천 동구 만석동에 광산기계를 제작하는 조선기계제작소를 세웠습니다. 일본의 대기업인 도시바의 전사로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에는 군수회사로 지정되는데요, 이후 1959년 이천전기주식회사가 인수한 공장은 다시 일진전기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로 공장 건물이 그대로 남아 영화나 광고 촬영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 계속)

 

Travel Tip. 노동자의 길

탐방지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안내판의 QR코드를 찍으면 온라인 탐방으로 이어집니다. 

✔️ 화도진 문화원 www.hdjcc.or.kr

✔️ 탐방안내서 E-BOOK https://www.hdjcc.or.kr/user/board/view.php?board_code=pub_data&sq=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