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코도마뱀의
벽 타는 기술 속 비밀
코끝을 스치는 따스해진 공기에 봄이 왔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봄이 오면 그간 움츠려 있던 모든 생명체가 기지개를 켜고 나와 활력 넘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럴 땐 해외여행에 대한 소망도 더욱 간절해지지요. 특히 저렴한 물가와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는 동남아는 최고의 인기 여행지인데요, 동남아 여행을 해본 분이라면 아마 이 녀석과 한 번쯤은 조우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행길 다니는 곳곳에, 심지어 호텔 방 천장에서도 목격하여 비명을 지른 경험이 있나요? 한국에서도 서식하지만 따뜻한 기후에서 잘 번식하는 종족 특성상 동남아에서 훨씬 많이 보이는 이 동물은 벌레와 유충을 잡아먹어 오히려 지역 사람들에게 사람 받는 도마뱀붙이, 일명 ‘게코도마뱀’입니다. 사실 이 녀석들은 겁이 많아 사람들을 피하기 전에 먼저 도망가지요. 사람이 다가오면 벽을 타고 쪼르르 도망가는 볼매(볼수록 매력 넘치는) 스타일입니다.
한 가지 더. 게코도마뱀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은 그들이 벽을 타는 기술입니다. 게코의 발바닥 표면을 언뜻 살펴보면 단순한 다른 파충류와 비슷한 모양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게코의 발바닥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게코의 발바닥을 확대해 보면 매우 얇은 강모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각 강모는 50~100㎛(마이크로미터)의 매우 얇은 형태로 수백만 개가 게코의 발을 덮고 있습니다.
각각의 강모는 다시 수백 개의 섬모로 분리되는데요, 하나의 섬모는 200~500nm(나노미터)로 매우 얇은 두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100㎛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게코의 발에는 그것보다 훨씬 얇은 섬모가 수억 개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수많은 섬모가 각각 반데르발스의 힘을 유발하여 게코가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반데르발스의 힘은 무극성 분자에서 전자의 운동에 의해 유도 쌍극자로 변하면, 그 순간 주위 분자의 일시적인 편극을 유도하여 서로 당기는 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온결합과 공유결합과는 다른 힘이지요.
다시 말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던 전자들이 우연히 한쪽에 모이게 되면 전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 전하는 극성이 없는 다른 무극성 분자를 극성분자로 순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힘은 이렇게 우연히 생긴 쌍극자와 유도된 쌍극자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쌍극자와 쌍극자, 그리고 쌍극자와 유도 쌍극자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 이 힘은 분자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울 때 중요해지는 힘이지요.
하나의 섬모에 작용하는 힘은 매우 미비하지만 이 작은 힘이 수억 개의 섬모에 의해 발생하면 매우 강력한 접착력이 생기게 됩니다. 작고 작은 쌀 한 톨도 모이면 20kg의 매우 무거운 한 포대 쌀자루가 되는 것처럼, 섬모 하나에 작용하는 반데르발스의 힘이 수억 개 섬모에 의해 발생하면 도마뱀 자신보다 수십 배 무거운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접착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코는 이 힘을 이용해 벽을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이지요.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게코의 이러한 벽 타는 기술을 여러 공학적 난제들에 적용해보고자 했는데요, 미국항공우주국 NASA에서는 게코 발바닥의 특성을 이용해 우주 임무가 가능한 로봇을 만든다고 합니다. 특히 이를 위해 나사 산하 제트추진연구소는 게코의 접착 원리를 이용해 새롭게 흡착판을 개발하였습니다.
게코 발바닥의 섬모를 모방한 이 흡착판은 약 150N(뉴턴) 정도의 힘을 지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단한 것은 3만 회의 탈부착 실험 이후에도 동일한 접착력이 유지되었으며, 우주 임무를 위한 여러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고 해요. 이 흡착판을 활용한 로봇은 앞으로 우주선 밖에서 우주선을 정비하거나 검사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기술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국내 연구진과 스탠포드 대학의 공동 연구팀이 게코의 접착 원리를 활용하여 몸에 부착해 심장병을 진단하는 웨어러블 센서 소자를 개발한 것인데요, 기존 혈압 측정기로 측정할 수 없었던 미세맥파를 나노 섬모에 적용된 센서 소자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게코의 접착 기술은 기존 접착테이프의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한 혁신적인 테이프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기존 테이프는 사용 이후 접촉면이 접촉제에 의해 더러워지며 재활용이 불가능했다면, 버클리 대학교에서 개발한 접착테이프는 게코가 사용하는 반데르발스 힘으로 접착을 합니다. 화학적인 접착물이 아닌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접착력이기 때문에 접착된 테이프를 제거하고 난 이후에도 더러워질 염려가 없지요. 또 자정 능력만 제대로 유지된다면 테이프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해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연 앞에 배울 것들이 많고, 그 지혜에 놀라울 뿐입니다. 이제 동남아 어느 호텔의 벽면에서 이 작은 도마뱀과 마주한다면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경이로운 눈으로 가만히 그 작은 생명체를 바라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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