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도 한결 줄어든 것 같다.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지만 주말을 그냥 집에서 보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날씨다. 약간은 쌀쌀한 듯하지만 공기의 촉감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뭐를 할까 고민했다. 겨우내 방콕으로 주말을 꽁꽁 싸맸던 나를 좀 풀어주고 싶었다. 신발을 신고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행선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이끌려 갔다. 겨우내내 맛보지 못했던 햇살 한 줌 한 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햇살을 좀 더 많이 담아 보고자 장갑까지 벗어 보았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마을 뒷산 입구에 다다랐다. 이곳은 한때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로 사랑방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널따란 배드민턴 경기장에는 배드민턴을 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었고, 배드민턴은 자신 없지만 운동 삼아 운동기구라도 한번 하고 가자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운동기구에 몸을 실어 신나게 운동기구를 움직였다.
그리고 맑은 약수라 소문난 약수터에는 커다란 물통을 집어 들고 온 이들이 한 통 가득 물을 길어가곤 했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꽤 오랜만에 찾아간 그곳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추억 속 풍경은 많이 퇴색해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이 달라져 있었기에 그러했으리라.
날이 풀리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예전에 느꼈던 생동감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돌멩이를 밟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꽤 경쾌하게 들렸다. 산 오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놓여 있었던 나무 계단이 드문드문 보이는 걸 봐서는, 의욕적으로 산을 관리하던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그리워졌다. 큰비가 오고 나면 유실된 계단을 바로바로 고쳐 놓곤 했었다. 산 오르기가 그때보다 힘들 수밖에 없었다. 계단이 없는 곳에서는 나뭇가지를 잡고 한발 한발 내디뎠다.
가파른 산은 아니었지만 미끄러운 바닥은 언제 어느 때 방심을 파고들지 몰랐다. 숨이 찰 때쯤 계단의 끝이 보였다. 하늘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시원하게 트인 사방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산을 오르는 내내 사람이라곤 보지 못했는데 산마루에 도달하고 나니 가방을 메고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숨을 고르고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세월이 흘렀어도 같은 곳에 똑같은 나무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제야 고향에 온 듯한 따스함이 피부로 전해졌다. 누군가가 고향을 어머니의 품과 같다는 한 것은 어머니 마음처럼 옛날도 지금도 변하지 않고, 처음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에 그리 표현한 것이리라.
‘와! 멋지다!’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인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 인천 바다도 한눈에 들어왔다. 맑은 날이 아니고선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기를 참 잘했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시원한 풍경일까. 쭈뼛쭈뼛 솟아난 아파트들을 보고 나니 저만치 흘러간 시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저기에 뭐가 있었더라?’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10여 분 멍하니 먼 곳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한때 주말이면 오르던 산들이었는데, 코로나와 시간, 그리고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저 멀리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게 못내 아쉬웠다. 찌든 일상과 스트레스를 모두 던져 버리고 정상에서 발을 옮겼다. 아직은 겨울이라 나뭇가지에도 낙엽 위에도 파란색 생명은 보이지 않았다.
곧 머지않아 이 산 여기저기에는 파란 새싹들로 넘쳐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초록색을 입은 산을 보기 위해 나는 다시 산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산은 말한다. 힘을 내라고. 힘들 때도 어머니처럼 힘을 북돋아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밟는 흙과 산은, 나에게 희망을 한가득 안겨주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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