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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n영어 47호] 데몰리션 :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주지

by 에디터's 2021. 11. 10.

영화 <데몰리션>(2016)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나서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은유 같다고 다음과 같이 하소연합니다.

 

For some reason, everything has become a metaphor.
왠지 모르겠지만 모두 은유 같아요.
I am the uprooted the tree. No, wait.
나는 뿌리 뽑힌 나무, 아니지.
I am the storm that uprooted the tree.
난 나무를 뿌리 뽑은 태풍.
I am the cold front that collided with the low-pressure system.
난 저기압과 충돌한 한랭전선.

 

하지만 그의 마음 상태와 달리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요? 이 영화는 아내에 대한 그의 평소 생각과 그녀에 대한 감정 간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에 이 영화는 인생의 한 궤적을 지나가는 한 남자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일만 생각하던 그는 이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출근할 때마다 자신에게 말을 걸던 남자의 말에 늘 귀를 막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돈을 넣었는데도 자판기에서 물건이 나오지 않아 고객센터에 항의 편지를 쓰면서도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이야기도 함께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계속해서 요청하던 물이 새는 냉장고에 신경을 씁니다. 대마초를 구하러 가는 생면부지의 여자를 따라가기도 하고요.

 

불안정하고 견딜 수 없는 상실감에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뭐라도 해야 했지요. 그리고 운 좋게도 그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보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 덕분에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 갑니다.

 

일만 알고 주변 사람의 마음 따위는 돌볼 생각을 하지 못한 데이비스는 그가 그동안 아내를 외롭게 내버려 두었던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성 정체성 때문에 힘들어하는 캐런의 아들의 아픔과 그런 아들을 위로해주지 못하던 캐런의 망연자실함입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줍니다. 그리고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일에 파묻혀 그 마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갔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요.

 

이러한 마음이 잘 드러난 대목은 줄리아의 아버지 필(크리스 쿠퍼)과의 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필은 죽은 딸을 기리는 방식으로 장학 재단을 세우려 하지만,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그녀를 위한 일을 제안합니다.

 

There was love between me and Julia.
저와 줄리아는 서로 사랑했어요.
I just didn't take care of it.
제가 그 사랑을 돌보지 않았을 뿐이지요.
I think the scholarship is...It's good.
저도 그 장학재단 좋아요.
I understand it.
취지도 이해합니다.
But I wanna do something else for her.
하지만 전 다른 걸 해주고 싶어요.
And, uh, I was wondering if, um... You'd wanna be a part of it.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시다면 함께해 주시겠어요?

 

그가 그녀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은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 줄리아(헤더 린드)가 즐겁게 타던 회전목마를 바다 앞에 설치해주는 겁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영화 전체가 은유로 점철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필이 슬픔을 극복하는 법으로 다음과 같이 데이비스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요,

 

If you wanna fix something, you have to take everything apart and figure out what's important.
무언가를 고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분해해서 무엇이 중요한 건지 찾아내야 해.
Repairing the human heart is like repairing an automobile.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것도 자동차를 고치는 것과 비슷하지.
Just examine everything. Then you can put it all back together.
전부 분해해서 꼼꼼히 분석해야 모든 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지.

 

동사를 명사화하는 동명사 ‘V+-ing’

마음의 상처와 관계의 뒤틀림을 자동차를 고치는 과정에 비유한 다음 문장은 영화 전체를 나타내는 하나의 은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pairing the human heart is like repairing an automobile.

 

이 문장에는 동명사 ‘repairing’이 쓰였습니다. 동명사는 동사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명사 역할을 할 수 있는데요, 이 문장에서는 동사 repair에 -ing를 덧붙여 동사를 명사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문장 전체에서 주어로 쓰였지요. 또한, 동사는 목적어를 취하지요. 이 문장에서는 ‘repairing’ 뒤에 the human heart가 목적어로 쓰였습니다.

 

데이비스는 어디서부터 자신과 줄리아의 결혼생활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기에 처음부터 그들의 삶을 분해해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가 자신의 집을 포크레인으로 부수고 냉장고를 해체하는 기이한 행동에서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녀가 몰던 차 속 아래에 떨어져 있던 그녀가 휘갈긴 메모장에 적힌 말들을 보며 그녀가 외로웠을 그 시기를 상상해봅니다.

 

If it's rainy, you won't see me, if it's sunny, you'll think of me.
비가 오면 내가 안 보이겠지만 해가 뜨면 내가 생각날 거야.
Stop being such a drip and fix me already.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 주지.

 

그리고 과거 그녀와 행복하게 지냈던 일상 속 추억을 기억해냅니다. 그녀와 데이트하던 시절, 공항에서 그를 마중 나온 그녀의 모습들이요.

 

아내가 죽은 후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내의 부재에 슬퍼하고 있지 않는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에 서툴렀기 때문이었지요. 진짜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그녀를 정말 방치만 했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상실감을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내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어요. 한 명 한 명 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던 저의 모습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작아지고 실망할 일만 생기는지 남 탓만 하고 살았지요. 사람들이 변한다고 주변이 변한다고 제가 가진 소신까지 버리면 저에게는 남는 게 정말 하나도 없게 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금 제 자신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9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