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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삼겹살

by 에디터's 2021. 6. 30.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윤기 나는 삼겹살을 만들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삼겹살 한 점으로도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오늘은 친구가 사주는 삼겹살이라 그런가 더욱 맛나 보인다. 잘 익은 삼겹살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상추쌈이나 쌈장에 찍어 먹기보다는 기름장에 찍어서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고기 맛을 아는 이들은 삼겹살은 두툼하게 썰어 앞뒤로 몇 번만 뒤집고 나서 익었다 싶으면 한 젓가락 덥석 집어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고깃집을 할 때조차 얼지 않은 삼겹살을 큼직큼직하게 써는 것은 미덥지 않았다. 언젠가 TV에서 유명한 박사님이 출연해 그런 얘기를 하셨다. 돼지고기는 소고기와 달리 충분히 익혀 먹어야 뒤탈이 없다고. 그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기에 두툼한 삼겹살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최대한 얇게 썰어 앞뒤로 옮겨가며 충분히 익히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친구와 함께 소주잔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쓰디쓴 소주가 넘어갈 때 부드러운 삼겹살이 뒤따랐다. 황홀한 기분이 든다. 삼겹살 한 점으로 아주 훌륭한 안주가 되는 것이다. 술을 먹을 때는 채소도 듬뿍 먹어야 술 깨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은 술자리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기에 두 번째 잔에는 삼겹살을 상추에 얹고 마늘과 깻잎을 얹어 파무침과 쌈장을 올린 후 뚱뚱해진 쌈을 한 손에 들고 친구에게 건배를 청했다.
과연 한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 커져 버린 상추쌈에 입을 최대한 벌려 크기를 맞춰 보았다. 문득 TV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이 생각날 지경이었다. 탈락한 이에게 그날 음식 맛보기 찬스를 주는 것이었는데, 최대한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 보기 위해 꽤 많은 양의 음식을 올려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추 하나에 여러 가지를 얹다 보니 생각보다 쌈 크기가 커진 것이었다. 굳이 한 번에 다 먹을 필요까진 없었지만 오기가 발동하는 바람에 가득 채운 쌈을 입 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볼이 볼록 튀어나왔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양볼이 불룩해진 개구리를 떠올렸으리라. 한동안 씹어야 했다. 열 번 이상을 씹고 또 씹고 나서야 비로소 삼겹살의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말없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면서 상추쌈에만 집중했다. 행여나 입을 열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었기에 모든 내용물을 목 아래로 넘기기 전까지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삼겹살을 한창 먹을 때는 이삼 인분도 혼자서 훌쩍 다 먹기도 했지만,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다 보니 맛있는 삼겹살도 열 점 이상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무런 양념 없이 삼겹살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하여 내가 끌고 온 음식점이었지만 많은 양의 삼겹살을 소화하지 못하고 나니 고깃집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불판의 불을 끄고 남아 있는 한 점의 삼겹살을 한 점씩 집고 막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 시작을 기름장으로 시작했던 만큼 막잔도 상추쌈 없는 순수한 삼겹살로 합의를 봤다. 마지막 한 점이라 아쉬움이 남을 법도 했지만 좋은 친구와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이라 그랬을까. 술도 달고 고기도 그 어느 때보다 맛있었다. 우적우적 삼겹살을 씹으며 고소한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고, 친구와의 우정도 한껏 쌓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그 친구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과연 그 친구는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